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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수필

51회 6학년 2반

이남주 기자 입력 2022.11.01 23:36 수정 2022.11.22 23:36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제주로 가기위해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쉽사리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안타까운 세월을 버리면서 왔다. 모든 것이 후회로만 남는 시간들 앞에 마음 한 곳이 무거워지며 십, 여년 전 못난 아비보다 먼저 하늘로 가버린 딸아이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번 여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 그동안 친구들과의 소원했던 거리를 좁히고자 함이고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 찾고자 함이며, 새롭게 시작하고자 함이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일찍부터 시작된 방황으로 6학년 수학여행도 가질 못했었다. 그렇게 수 많은 이야기들을 남기며 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그 감정이 일순간 복받쳐 오른다. 울컥 눈물도 흐른다.

ⓒ 김천신문
맑은 가을 하늘과 마주한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부산, 서울, 광주, 여수 등에서 출발한 친구들과(23명) 모여, 2박 3일간 어른이(?) 들의 수학여행이 시작됐다. 이번 여행의 중추적 역활을 훌륭하게 해온 회장 장종상을 비롯해 김한표 총무, 강대권, 강학선, 권오찬, 김만중, 김종선, 문복현, 박인철, 이태영, 이남주, 정준균, 정명조, 장창도, 최사범, 김나림, 노선순, 박덕림, 강복림, 김점례, 최혜숙, 한영자, 김선옥 등 남자 15명 여자 8명이 모였다. 공항 시작부터 벌써 시끌벅적하다. 다들 어린시절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지지배배 지지배배’ 들떠 있다.
 

친구중에 시인 박인철이 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시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시인이라고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부탁을 했다. 이번 여행에 맞춰 좋은글을 남겨 달라고...

그렇게 첫날은 점심을 시작해서 버스 기사님의 멋진 입담과 함께 하는 가이드로 우리는 ‘룰루랄라’ ‘눈누난냐’ 제주 수학여행을 시작했다.


내 옆 맞은편에 김나림 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말솜씨? 덕분에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번 여행에 온갖 굳은일과 모든 지휘를 맡은 총무 김한표가 있어서 든든했다. 절도 있는 군 생활에 특화된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지 않게 하기위한 세심한 배려와 전체를 아우르며 포용하고 때로는 유머와 재치로 웃음을 안겨 주며 최고의 총무직을 수행했다.



아침 저녘의 기온차가 크다. 이젠 나이들이 있어서 건강이 최고의 관심사이며 걱정거리다. 이중에 강학선 친구가 제일 걱정이다. 벌써 알콜 치매 증상이 있다는데 제발 술을 줄이고 건강 관리에 신경 써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하얀 거품 머금은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우리는 박인희의 ‘모닥불’ 노래를 생각하며 기념 촬영도 하고 먼바다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고함도 쳐본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고 말괄량이였을 우리들은 어느새 다 큰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파도속에 묻혀 저 깊은 심해속으로 사라져가는 이 순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언제 다시 이런 순간이 오랴, 언제다시 우리의 이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으랴, 머물다 사라져 버린대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리들의 것, 1974년 시절로 돌아가 맨땅에 작대기로 오징어 한 마리 그려 게임이라도 즐기고 싶은 심정 꾹 참고 한잔 술에 음(音)을 타서 목 넘기니 속절없는 세월도 오늘만큼은 새끼줄에 꽁꽁 묶여 시간속에 갇혀 버렸구나...


겹겹이 물결처럼 파도처럼 밀려왔던 저 웅장한 침묵들 마음을 적시면 붉게 물들 거 같은 저들의 가슴엔 어떤 세계가 뛰고 있을까, 애기똥풀꽃 같은 저 미소는 봄볕에서 베낀 걸까 빈 밭 쟁기질하던 아부지 같은 무지개 잡으려 다시 학교 가는 6학년 2반들...


우리의 젊음은 이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는데, 여행 끝자락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대형사고가 발생해 노을 물든 들녘 하늘을 바라보며 먹먹한 가슴 희생된 넋들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학교 가는길/시인 박인철 
 
6학년 2반

세월에 바랬을까 
심장처럼 뛰던 그 황토빛은 어디로 가고
단단히 굳은
풀잎 하나 품지 못한 내 낯빛 같은 학교 몰랑
한 무리 파란 바람이 지나간다

그날은 연파리 장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넘새밭 넘새를 뽑았고
장에 가는 넘새를 따라 나도 처음
세상 속으로 걸어갔다

이 학교 몰랑을 부지런히 올라 댕기믄
무지개를 잡을 수 있는 거여

그날부터 무지개를 쫓아
나를 등허리에 비스듬히 둘러메고
아부지 등 허리처럼 길게 굽은 학교
몰랑을 오르고 또 올랐다

풍금 소리가 포플러 잎 속살같이 일렁이면
서시천을 달려 물비늘 번뜩이는 섬진강으로
이승 끝을 서성이며 108배 음지 수행하시던
어머니를 닮은 수홍루를 건너
극락 속으로 수도승처럼 정진했다

점점 작아진 나

어머니가 잡으라던 그 무지개
그것은 어떤 것일까

6학년 2반
이제는 내 등허리처럼 길게 굽은
학교 몰랑

빈 밭 쟁기질하며 누렁소처럼 돌아 웃던
아부지 같은
그 무지개 잡으러 나는 다시
학교에 가고 있다


사진 이남주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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