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1월 23일,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스타쉽(Starship)의 첫 번째 넘버원 싱글⌜We built this city⌟가 2주째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여러번의 변신을 거쳐 끝내 살아남은 스타쉽이 상업적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스타쉽의 변신을 따라가 볼까?
스타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조우하게 된다. 1960년대 후반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은 그레이트풀 데드, 퀵 실버 메신저 서비스, 컨트리 조 & 더 피쉬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4인방으로 불리며 사이키델릭 씬을 주도했다. 싱어송라이터 마티 발린(Marty Barlin)과 걸출한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이끌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1967년⌜Somebody to love⌟,⌜White rabbit⌟등이 수록된 앨범⌜Surrealistic Pillow⌟과 함께 이른바 사랑의 여름⌜Somebody to love⌟의 중심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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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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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들어 사이키델릭 붐이 침잠해 가자 1974년, 밴드는 이름을 제퍼스 에어플레인에서 제퍼슨 스타쉽 (Jefferson Starship)으로 바꾸고 심기일전을 꿈꿨다. 하지만 제퍼슨 스타쉽 시절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밴드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Red Octopus⌟를 터뜨리기도 했지만 사이키델릭의 미련을 확실히 버리고 완벽한 팝 록 사운드로 변신했다. 변시은 대성공이었다. 상업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스타쉽은⌜We built this city⌟,⌜Sara⌟,⌜Nothing’s gonna stop us now⌟등의 넘버원 싱글을 잇달아 터뜨리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스타쉽의 변신 이야기다. 그 후로도 밴드는 해체와 부활(때로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이름으로 때로는 제퍼슨 스타쉽의 이름으로)을 거듭하며 몇 번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초지일관 한 가지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것과 적절한 변신을 통해 살아남는 것, 두가지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스타쉽의 경우는 후자였다.
개인적으로는 스타쉽의 음악 가운데 ⌜Count On Me⌟를 많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