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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수필 공원-조복(造福)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1.18 12:59 수정 2024.01.18 12:59

김영호 / 화양연화 대표 / 전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교장


2024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자 갑진년 푸른 용의 해이다. 새해 일출은 지인들이 카톡이나 페이스북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대신했다. 오전 10시부터 지인들에게 전화로 새해 인사를 했다. 나보다 연장자도 있고 동갑도 있고 십년 이상 손아래도 있다. 인사 중에 공통으로 들어간 게 조복(造福)이다. 조복은 복을 만든다거나 복을 짓는다는 뜻이다.

아내는 2017년 2월 15일에 수술을 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건강하게 치료가 되었다. 수술을 하고 5년 동안은 1년에 두 번씩 검사와 결과 확인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1년에 네 번 서울을 오르내렸다. 그 뒤로는 1년에 한 번씩으로 줄었다. 교통이 발달해서 하루 만에 서울을 오갈 수 있어서 좋다. 아포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오전 10시에 아포역에서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12시간 만인 밤 10시에 서울역에 내렸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저~ 셀프주유소는 처음 이용하는 데 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1톤 트럭에서 내린 60대 남자가 부탁을 한다. 김천구미역에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신용카드를 빼라는 기계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주유소 직원도 보이질 않았다. 몇 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도 기차 시간은 넉넉할 것 같았다. 화면에 나오는 차례대로 경유 5만원을 선택하고 신용카드를 넣고 주유건을 연료통 입구에 넣었다. 그러는 중에 내 차량의 주유기에서는 연신 신용카드를 빼라는 기계음이 반복되고 있었다. 2024년 1월 2일 화요일 오전에 있었던 일이다.

김천구미역에서 기차를 탄 지 1시간 30분이 못 되어서 서울의 수서역에 도착했다. 조금 걸어 나와서 병원의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 기사는 아주 친절하다. 큰 목소리로 “… 출발합니다~~”와 같이 마지막 한 글자를 아주 길게 빼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반은 환자고 반은 환자를 따라온 사람이다. 예약, 진료, 수납 등의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검사 과정을 마치고 3시가 지나서 지하 1층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달게 먹고 넓은 복도 겸 통로의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선 나무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갑자기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야, 이렇게 쏟으면 어쩌란 말이야”라는 여자 아이의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아이가 음료수를 쏟아서 휠체어를 탄 여자 아이의 옷과 무릎을 덮은 담요가 젖고 바닥에도 물기가 흥건했다. 말을 한 것으로 봐서 여자 아이는 누나인 것 같고 남자 아이는 동생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동생이 들고 있던 유리 음료수병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고 말았다.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하고 누나는 계속 짜증을 냈다. 병원의 고단한 일정에 빵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쉬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멀거니 보기만 했다. 메고 간 가방을 뒤졌다. 양치도구, 우산, 필통, 책, 마스크, 빗, 수건, 그 중에 화장지도 있었다. 재빨리 아이들 곁으로 가서 여자 아이의 옷과 담요의 물기를 닦고 바닥의 물기도 훔쳤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새해 인사는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그 다음은 “건강하세요.”로 이어진다. 복을 받는다는 것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수복(受福)이다. 수복은 상대방으로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새해 인사를 수복(受福) 대신에 조복(造福)으로 했으면 좋겠다. 내가 복을 짓는 것은 나에게도 복이 되지만 상대방도 내 복을 함께 받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두 가지는 조복이다. 복을 만든 나도 복을 받고 상대방인 주유소에서 만난 60대 운전자나 병원에서 만난 남매도 복을 받는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라거나 “말 한 마디에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있다. 모처럼 만난 친구에게 “친구야, 너 많이 늙었구나.”라고 한다면 내 복과 친구의 복을 동시에 걷어차게 되고 두고두고 어색한 감정을 갖게 한다. 반대로 “친구야, 자네는 옛날 그대로네.”라고 한다면 설령 그 친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더라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 말인가? 말을 하는 나도 말을 듣는 친구도 함께 복을 만드는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 좋은 말은 조복의 지름길이다.

그리고 내 건강을 지키는 것은 아주 좋은 조복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건강하면 자기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이 건강이다. 내가 건강하면 배우자나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는 건전한 마음이 자리 잡는다. 흔히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한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라고도 한다. 건강을 잃으면 조복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하루하루가 조복하는 참 좋은 날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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