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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기사

아주 옛날에도 사람이 살았네

편집부 기자 입력 2005.06.23 00:00 수정 0000.00.00 00:00

감문국 곳곳에 사람 산 흔적이!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 지료조사가 완료됐다. 김천시가 경북대 박물관팀에 용역을 의뢰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감문면과 개령면 일원 87.28m2, 선사시대~통일신라시대 유적을 조사한 것이다. 본지에서는 지역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를 위해 긴급 입수, 보도하게 됐다. (편집자 주)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시, 문화재 지정 신청 연내


1.조사현황


■ 조사기간 : 2004년 2월 19일~2005년 5월 24일
■ 조사 대상 지역 및 시기  : 감문면과 개령면 일원 87.28㎢, 선사시대~통일신라시대
■ 조사방법 :
  


   - 기 실시된 각종 유적조사의 문헌자료와 지형도상에서의 유적의 입지 가능성에 대한 분   석,        현지 주민들에 대한 탐문 등을 바탕으로 실지답사를 실시
  


   - 유적은 상세한 기록과 사진촬영을 하고 GPS측점을 1/5,000 수치지도에 표기 분포도 작성
  


   - 표본이 되는 고분군과 고분은 평판 및 등고 측량을 하고 내부 석곽과 석실의 실측도 작성
  


    - 이외에 감문면과 개령면의 각 학교와 개령면사무소, 국립대구박물관, 경북대학교 등의 각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지역 출토 유물들에 대한 사진촬영 및 실측도 작성.


 ■ 문헌기록의 감문국(군)
 삼국사기에 따르면 개령 일대는 감문소국이 위치했으며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는 감문군(또는 개령군)의 치소이었다. 어모현(禦侮縣, 김천시 어모면)과 금산현(金山縣, 김천시), 지례현(知禮縣, 김천시 지례면), 무풍현(茂豊縣, 무주시 무풍현)의 네 영현을 두고 있었다.
 


 


  557년(진흥왕 18) 군주(軍主)를 두어 청주(靑州) 또는 감문주(甘文州)라 했고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문무왕 때 감문군을 설치했으며 경덕왕 때 개령군으로 개명했다.


 


  즉 개령지역을 중심으로 한 김천은 상주의 사벌국(沙伐國), 의성의 소문국(召文國) 등과 함께 소백산맥 이남지역에 위치하였던 소국(小國)들 가운데 하나로서 일찍이 신라에 복속되었으나 신라의 백제와 가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위한 전략적 중요성 등에 의해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도 그 세력은 축소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번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조사내용
  이번 지표조사에서는 삼성리 지석묘 등 선사시대 유적을 일부 확인됐다. 비록 감문국 당시의 유적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감문국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지배를 위해 조성했다고 생각되는 거점성인 감문산성과 속문산성, 보조성인 고소산성, 그들 사후의 안식처로 조성된 묘역으로서 개령면의 동부·양천리 고분군, 서부리 고분군, 덕촌리 고분군, 광천리 고분군, 감문면의 문무리 고분군과 삼성리 고분군 등의 고분 분포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령초등학교내의 대형초석이나 광천리 출토 금동불상 등의 출토상황으로 볼 때 신라 통일 이후에도 관청이나 절 등의 건물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 산성
 감문산성은 토석혼축 내지는 삭토법으로 구축한 성벽이 주를 이루며 성내 정상부와 계곡 안쪽에 평탄지가 조성돼 있고 기와와 토기 등의 유물들이 채집됐다.


 


 속문산성은 해발600m의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석축성벽으로 구축됐다. 성내에는 탄지를 중심으로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관찰되며, 다량의 기와와 속문산성 토기 조각들이 관찰된다.
고소산성은 문무리 마을쪽의 계곡에 석축성벽이 잘 남아 있고 능선과 산정부쪽에는 토석혼축으로 구축돼 있다.


 


  - 고분
 감천변에 위치한 감문산성을 중심으로 한 산자락에서 동부·양천리고분군, 서부리고분군, 덕촌리고분군, 광천리고분군, 속문산성을 중심으로 서쪽의 감문천 상류에는 문무리고분군, 동쪽의 외현천 상류  에는 삼성리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고분은 대체로 지름 10~15m, 높이 1~3m의 중형분이 중심이며 각 고분군마다 현재 수기에서 수십기 정도가 관찰된다. 가장 많은 수의 고분이 조사된 곳은 감문면 문무리로서 현재 270여기의 고분이 관찰되며 상당수의 고분이 분구가 유실돼 내부의 석곽이나 석실이 지표면상에 노출돼 있다. 이것은 이 지역의 토양이 유실되기 쉬운 마사토란 점에 기인하는 듯하며 경지 확장을 위해 고분을 훼손한 경우도 확인된다.


 


 - 유물
  개령면 양천리371-1번지 석곽에서 금귀걸이와 금동장식 화살통, 감문면 삼성리고분군에서 오리모양토기 등의 중요 유물이 출토돼 이 지역의 지배계층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2. 특이사항
  이번 지표조사에서 관찰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첫째, 대형의 판상석을 이용한 석곽과 석실의 벽석과 개석이 지표면상에 노출되어 있는 점이다. 즉 문무리고분군처럼 수 백기의 고분이 밀집하여 조영된 예는 영남지역의 각지에서 흔히 보인다.


 


  그러나 대형판상석을 이용한 판상석조의 벽석과 개석 등 고분 내부의 석곽이나 석실이 지표상에 노출되어 마치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열지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극히 드문 예로서 보존과 보호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장대석과 판상석을 이용한 고분의 구조적 특징이다. 판상석조의 석곽은 김천시내의 모암동고분군에서 발굴조사된 바 있고 다수동 고분군, 부곡동 고분군 등에서도 지표조사시 보고된 바 있다는 점으로 볼 때 김천지역의 5~6세기대의 일반적 묘제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접한 상주와 선산 등 경북 북부지역의 묘제가 주로 소형할석을 벽돌처럼 쌓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칠곡군 황상동 고분군, 약목 고분군, 창평리 고분군, 성주 성산동 고분군, 대구의 비산동 고분군 등 낙동강 중류역유역을 중심으로 그 분포가 확인되지만 김천지역처럼 다수를 점하고 있지 않다.
 


 


 향후 발굴조사 등에 의해 보다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현상으로 볼 때 김천지역의 묘제는 “판상석조석곽”이라는 구조를 중심으로 주변지역과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감문면과 개령면이라는 비교적 좁은 면적내에서 감문산성과 속문산성이라는 두 개의 거점성과 보조성인 고소산성 등 3개의 산성이 동시기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대체로 두 거점성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자료가 축적되어야 밝혀지겠지만 감문국의 치소로서 역할 외에 대가야 및 백제와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한 군사전략적 역할 증대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3. 향후 처리방향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개령·감문지역에는 고대의 고분과 산성 등 수 많은 유적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러한 유적의 정비 복원을 위해서는 현재까지 조사된 유적들에 대해서는 표지판을 세우거나 번호판을 설치하는 등 주민의 경작에 의한 추가적 훼손방지, 고분내의 폐비닐 등의 쓰레기 수거, 잡목의 간벌 등 보호조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이후 유적의 정비복원과 학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자료 확보를 위한 발굴조사와 그에 따른 연구의 축적이 필요하다.


 


 또한 구체적인 복원 및 정비 방식 등에 대해서는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의 자문회의 등을 거쳐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고분과 고분군의 복원 정비에 대해
  문무리 고분군과 같이 고분군을 형성하고 있는 270여기의 고분가운데 상당수가 지표면상에 노출되거나 내부로 출입이 가능해 내부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예이다. 복원정비시 분구를 그대로 덮어 봉분만 크게 만들지 말고 노출된 석곽과 석실을 더 이상 유실되지 않도록 보존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고분정비의 예로서는 일본 오사카의 치카스아스카고분군 정비 예가 참고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히 큰 분구만을 복원하는 일반적인 방식 외에 고분의 내부구조를 일반인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노출시키거나 유리천정을 덮어 보존했으며 각 고분 사이는 산책로서 연결하고 각종 야생화와 희귀 식물을 심어 자연학습의 장을 겸하도록 했다.


 


 또한 유적 중심부 평지에 고분군의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지하의 박물관을 지어서 이 고분군의 발굴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산성의 복원 정비에 대해
  산성은 3개가 확인되었는데 성벽의 구조가 토석혼축과 석축으로서 비교적 잘 보존돼 다는 점에서 잡목의 간벌만 해도 성의 윤곽이 멀리서도 보일 수 있고 성에서 먼곳까지 조망할 수 있다.
 


 


 복원을 위해서는 단순히 웅장하게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새로 성을 쌓아서 복원하기 보다는 현재 남아 있는 원래의 석축 상태와 석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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