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우리 가족의 고향 나들이
얼마 전 조카결혼식이 있어서 고향 김천을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에 대학졸업반인 딸과 해군복무중 휴가 나온 아들을 대동한 우리가족의 고향나들이였다. KTX 김천(구미)역에서 내리자 문득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김천시 성내동 64번지이다. 대문 앞에 큰 오동나무가 있어 오동나무집이라 불리던 곳이다. 상주통로 시외버스터미널 쪽 인도에서 항도빌라(예전의 ’환선공작소‘ 보통은 ’불미공장’으로 불리던 곳)를 바라보며 예전의 우리 집까지 걸으면서 엿 공장이 있던 골목, 숨바꼭질 하던 골목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은 원래 이층 슬라브 지붕 집으로 1층은 가게, 2층은 가정집이었는데 지금은 3층 타일벽체의 건물이 들어섰다. 우리 뒷집 골목, 다음 골목, 그 다음 골목… 점점 더 어린 시절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교육청을 끼고 예전의 성남도장 골목은 큰 차로가 생겼지만 오래 전 골목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은 그대로 였다. 어릴 적엔 좁지 않던 그 골목이 지금은 왜 그렇게 좁게 느껴지는지. 교육청 청사 앞에서 집사람과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나는 청사 뒤편 언덕에서 술래잡기와 쥐불놀이도 하던 추억으로, 집사람은 장인어른께서 오랫동안 교육청의 장학사로 계셨기에 남다른 감회로 한참을 머물렀다. 중앙초등학교를 바라보며 성남교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유명을 달리한 옛 친구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와 같은 하숙집에서 지냈던 절친의 느닷없고 황당했던 소식을 접하며 참담해했던 그때가 떠올라 눈물이 맺혔다. 지금처럼 안전한 펜스가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운 친구여, 언젠간 자네가 있는 곳으로 나도 가겠지만 잘 지내고 있게나. 어른들께도 안부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성남교를 돌아 김천역으로 걸어가면서 거리를 보니 한 때는 시내중심가로 부산했던 거리가 활기를 잃은 느낌이었다. 신신모자점, 춘양당서점 등이 있던 상가들이 패션브랜드들로 대체되었지만 시청을 포함한 관공서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KTX 역사 주변으로 새로운 도심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천역 광장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옛날엔 80번지라고 불렀던 곳을 거쳐 누나 집에 도착해 결혼식장인 직지사 파크호텔로 향했다. 외곽도로를 이용해 대곡동(예전의 백옥동)을 지나면서 옛날 우리 집 과수원이 보였다. 지금은 천변공원으로 흡수되어 흔적도 없는 그 곳. 영남제일문을 지난다. 우리 집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자 지금은 병석에 계신 장모님의 인생이 오롯이 스며있는 이로리 마을이 차창 너머로 스친다. 내년 따뜻한 봄에 앰뷸런스의 도움을 받더라도 한번 다녀가시면 좋을 텐데. 이윽고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가슴 뭉클했다. 신장이식을 받은 딸을 시집보내는 누나가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셨을 것이다. 화촉을 밝히는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흐뭇했던지. 결혼식이 끝나고 금릉공원에 안치되신 아버님과 어머님 묘소를 참배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누나와 동생이 가까이 있어 가끔씩은 찾아와 주변정리를 해서인지 깔끔한 상태였다.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께는 술잔 가득히, 술을 전혀 못하셨던 어머니께는 술잔 가볍게 따라 올렸다. 취하시면 노래도 구성지게 잘 부르셨던 아버지, 그 노래를 들으며 그냥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 그립습니다. 김천시가 시로 승격한 지도 70년이넘었다고 한다. 삼산이수의 고장 내 고향 김천이 더욱 발전하여 영속하는 도시, 살기 좋은 고장이 됐으면 좋겠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미력하지만 나도 힘을 보탤 것이다.
김천신문 기자 / 2020년 01월 22일
[인문학 한 그릇]-백범 김구를 다시 생각하다
김천시 부항면 양지말길 50-7의 평범한 주택. 철제로 된 대문기둥 앞에는 ‘백범 김구 선생 은거지’라는 표석이 있다.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벽돌로 지은 농가 주택인 이곳은 원래 이 지역 토호인 일주(一舟) 성태영이 살았던 집으로 전해진다. 1895년 10월 8일 조선공사 미우라 고로에 의해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되는 이른바 ‘을미사변’이 발생한다. 이듬해 1896년 3월 9일, 당시 21세 조선인 애국청년이었던 김창수(훗날 김구로 개명)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포구에 있던 여인숙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중위 쓰치다 조스케를 발로 차 쓰러뜨리고 난도질해 살해한 다. 그는 “국모 보수(國母 報讐 : 국모를 죽인 원수를 갚음)를 위해 이 왜인을 죽이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고 밝힌 포고문을 남기고 체포돼 사형을 언도 받았다. 황후의 원수를 갚겠다는 대의명분이 왕실에 전달되어 그는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목숨을 건지게 됐다. 석방될 기미가 없자 김창수는 1898년 인천 감리서를 탈옥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지금의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에 사는 동지 성태영에게로 와 1달 간 은거한다. 이때 성태영 등이 김창수의 이름을 연하(蓮下) 김구(金龜)로 개명해 주었다. 1912년 호를 백범, 이름을 구(九)로 바꿀 때까지 김창수로 썼다. 김구라는 이름은 김천에서 탄생한 것이다. 김구의 자서전격인 ‘백범일지’에 나오는 김구가 술회한 일명 ‘치하포 사건’과 은거생활의 내용이다. ‘백범일지’는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었고 이는 정의의 의거를 실행한 역사적 사실이 되어 일본에 맞선 독립의 영웅으로 김구는 자리매김 되기에 이른다. 그후 김구는 상해 임시정부에 국무령과 주석을 지냈으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획하는 등 독립운동사에 혁혁한 족적을 남 긴 것이다. 너무나 큰 울림으로 각인되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신화적 존재가 되어왔다. 오래 전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으로, 거의 모든 국회의원이 김구를 꼽았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김구의 존재는 국민적 영웅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진실의 검정을 거친다면 이러한 영웅주의의 바탕에는 한국인의 반일 종족주의에 근거함이 아닌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반일이란 민족주의는 이념을 하나로 묶는데 최고·최선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했고, 의도된 역사교육의 폐해는 김구 자신도 버거워할 만한 신화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자서전이란 게 원래 자신을 미화시키기 위한 영웅설화적 면모를 띄게 되는 것. 우리가 대하는 ‘백범일지’는 춘원 이광수의 영향을 입은 것이라 한다. 치하포 사건은 김구가 현장에서 자수한 게 아니라 해주에서 순사에게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살해 동기도 ‘국모 보수’라는 대의가 아니라 여인숙에서 노인보다 젊은 일본인에게 먼저 밥을 차려주는 것에 대한 개인적 분노 때문이었다고 한다. 살해된 일본인은 일본군 장교가 아닌 상인이었다. 살해직후 일본 상인의 배에서 800냥을 탈취한 김창수는 살인강도였음 등이 사건취조기록 공식문서로 남아있다. 우리의 역사교육이 애써 사실을 외면한 채 감성팔이 교육에 매진해 왔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김천신문 기자 / 2020년 01월 22일
인문학 한 그릇-꼭두각시의 꿈 그 비애를 넘어서는 길
2019년 한 해를 달군 뜨거운 화제의 하나는 자녀 교육 문제이다. 연초에 자녀 교육 문제를 다룬 텔레비전 방송 드라마 스카이(SKY)캐슬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이 잠잠해질 무렵부터 J장관 딸의 입시 문제가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있어서 공정의 문제를 새삼 거론하기 시작했다.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2월 05일
제언-힘든데 대충해라
몇 달 전에 어머님이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져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지셨다. 그래서 나와 아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한 달 정도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셨다. 아내와 내가 정성스럽게 어머님을 돌보았다. 아내가 화장실 청소도 매일 하고 이부자리도 매일 갈아드리고 방 청소도 깨끗이 하고 아침마다 뇌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건강보조식품을 드렸다. 어머님께서 며칠 지나고 나서 우리에게 뜻밖의 말을 하셨다. “너희가 나를 위해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제 그렇게 열심히 하지마라. 너희들도 힘든데 대충해라”어머니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2월 05일
칼럼-하야로비가 왜가리인가
해오라비를 소재로 한 조선 중기의 시조이다. 유명한 문장가며 서예가인 신흠(申欽 호 象村 1566~1628)이 지었다. 광해군 때 자신이 직접 경험한 대북파와 소북파 사이의 당파싸움을 풍자한 작품이다. ‘해오라비’는 당쟁을 일으키는 권력자, ‘고기’는 죄 없이 피해를 입는 약자, ‘한 물’은 한 조정을 상징한다. 당쟁을 그치고 화평하기를 소망한 것이다.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2월 05일
기고-정치인의 기부행위 상시제한
어느덧 2019년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쯤이면 우리는 ‘나눔과 기부’의 의미를 한 번씩 되새기곤 합니다.기부의 사전적 의미는 ‘자선사업이나 공익사업을 돕기 위해 재물을 무상으로 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선거에 있어서 후보자의 지지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기..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2월 03일
기고-농부산물 태우지 말고 파쇄해주세요
쌀쌀한 바람과 함께 불의 사용이 잦은 계절이 찾아왔다. 건조한 겨울과 봄철에 화재가 집중되기 때문에 각 소방서에서는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을 지정하여 화재예방 분위기를 조성하고 겨울철 소방안전 대책을 마련하여 화재예방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확을 끝낸 논·밭에서 농..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1월 14일
삶의 향기-백두산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으로만 봐오던 백두산 천지를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나의 바람이 딸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수일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중국 심양과 단동을 거쳐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아! 저 푸른 물, 하늘과 땅 이름 하여 천지로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태고에 천지를 ..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1월 08일
인문학 한그릇-역사와 문화를 향한 열정
계절마다 한 번씩 찾아가는 역사 문화 유적 탐방 길을 나선다. 이번 길에서는 육백 년 역사를 지닌 경기도 고양의 문화를 탐사해 보기로 하고, 몇 곳을 정하여 길을 돋우었다. 먼저 행주산성을 찾았을 때는 점심나절이 가까웠다. 점심시간에 쫓겨 임란 대첩기념비와 기념관, 토성을 주마간산으로 스쳤다. 점심을 먹고..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1월 08일
기고-올해가 가기 전 꼭 ‘건강’챙기세요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19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맘때가 되면 해가 바뀌기 전 부랴부랴 국가건강검진을 받느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편으론 자신이 검진대상자인지도 모르고 놓치는 경우도 상당수다. 국가건강검진에서는 다양한 검사 항목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
김천신문 기자 / 2019년 11월 05일
1/111
포토갤러리
포토뉴스-전통시장 장보..
김충섭 시장, 코로나19 ..
중국 자매도시 위한 우..
많이본 뉴스
1  송언석 의원, 지역구 단독 공천 신청
2  상주상무프로축구단 새 연고지로 김천 물망
3  김천시의회에 ‘오삼이’가 떴다
4  김천버스 적자폭 증가에 대한 대책 없나
5  해발 380m 산에서 2대째 이어온 전통비법으로 푹 고아 만든 경옥고 ‘칠일고’ ‘힘내고’
6  송언석 의원, 중부선 `김천~문경` 구간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사업추진 본격화 강력 요청
7  도심 속 ‘신음공원’ 시민 힐링 공간으로 재창조
8  지난해 김천 인구수 125명 늘었다
9  김천고 송설 84회 졸업식...232명 졸업생 배출
10  김천시, 입식테이블 교체 지원
자치행정 사회종합 지역경제
인물 특집 오피니언
생활일반 교육문화 스포츠
김천신문
주소 : (39607) 경북 김천시 김천로 62 장원빌딩 6층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 임경규 오연택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성
Mai l : kimcheon@daum.net
Tel : 054)433-4433 / Fax : 054)433-200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67
등록일 : 2011.01.20
제호 : I김천신문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