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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

얼 굴

편집국 기자 입력 2005.11.09 00:00 수정 0000.00.00 00:00

정춘숙(주부·부곡동)


 


 


뒤편 베란다 창문 너머로 누런 황금 바다가 창문 가득 자리를 메운다. 연한 안개 속으로 경적을 울리는 기차 소리 너머로 작은 농부의 마음과 손이 바쁜 듯하다. 누런 들판 속으로 떠오르는 얼굴 하나. 청량한 초가을 문턱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아버지 얼굴, 아무리 보고 싶어도 이젠 사진으로 밖에는 뵐 수가 없다.


 


위암 선고를 받으시고 2년의 세월을 병마와 싸우시다 돌아가셨다. 이젠 끝이란 생각밖엔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얼굴, 너무나 수려한 외모였지만 세월의 힘 앞에선 아버지의 힘든 인생의 자국들이 가슴 깊이 저려온다.


새벽녘 깊은 단잠을 자다 깨면 새벽의 고요함 속에 가만히 내 마음을 흔드는 아버지의 모습들! 흰 두루마기에 옥빛 바지를 즐겨 입으셨던 명절 때의 아버지 모습, 지금은 뵐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아주 쉬운 말들이 지금은 너무나 아프게 가슴에 자리 잡는다.


 


 


늘 곁에 숨 쉬던 사람이 보이지 않음은 엄마 역시 참기 힘든 고통이셨을 것 같다. 같이 잠자고 늘 같이 농사일을 하던 60여년의 세월을 어찌 감당하셨을지, 너무나 힘드셨으리라 생각된다. 무더운 여름 한 낮에도 엄마는 매일매일 아버지 산소가 있는 밭에서 김을 매셨다.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손은 아버지의 얼굴과도 같은 묘를 쓰다듬곤 하셨다. 작은 싸움은 가끔 하셨지만 엄마에겐 너무나 가슴 아픈 큰 사랑이셨으리라 생각된다. 작은 풀 하나라도 손으로 직접 뽑으시면서 무덤을 만지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이젠 내 작은 지갑 속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모습, 구경을 너무 좋아하셔서 늘 행사가 있는 곳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버스를 타고 가시곤 하셨다. 너무나 야윈 볼에 내 아이들의 볼을 살며시 비벼주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들! 지금도 딸아이는 아버지가 계셨던 병원 앞을 지나 갈 때면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난다고 재잘거린다. 울컥하고 작은 무엇인가가 올라오지만 이젠 속으로 울어야 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아버지의 얼굴, 진짜 그리워진다. 못 다한 효도, 잘못한 일들, 너무나 많지만 해 드릴 수 없다. 스산한 가을의 문턱에서 더욱 더 그리워진다.


 


 


얼마 전 첫 제사가 지나갔다. 파릇파릇 잔디가 살아 있는 묘소 앞에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꽃 한 다발, 술 한 잔 부어 드리는 일밖에 없다. 살아계실 때 자세히 보아둘 걸. 이제는 후회로 남는다.


 


 


하얀 머리의 깊은 주름, 유난히 코가 잘생긴 아버지의 얼굴, 잔잔한 웃음이 많으셔서 작은 눈가의 주름이 유난히 많으셨다. 너무나 선한 이미지의 얼굴, 우리 아버지 얼굴, 그 모습을 닮고 싶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부모의 모습이 더욱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내가 아버지의 얼굴을 닮고 싶듯이 내 아이들도 먼 훗날 나의 얼굴을 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이젠 그리울 때마다 지갑을 열게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옛 추억이 새롭게 느껴지고 옛정이 많이 그리워진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한 나의 아버지, 감사의 표시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버지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뿐이다. 고사리 같은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흰국화 한 다발 들고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 산소가 걱정이 된다. 작은 잔디들이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힘든 인생이었지만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시리라. 나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내 주실 아버지의 선한 웃음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닮고 싶다. 아주 간절하게…….                              


 


 


(제2회 시민문예백일장 산문부 장원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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