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숙(남산동)
무심히 시댁 마당을 들어서고 있었다. 아버님 기일이어서 양 손에 시장꾸러미를 들고 막 댓돌 근처에 갔을 때였다.
등이 서늘한 느낌이 들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부드러운 종아리에 와서 꽉 박히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뒤를 돌아보니 시댁에서 키우는 개 누렁이였다. 갓난 강아지 때부터 키워와 애들도 나도 귀여워하던 개였다.
순간 부엌에서 어머님이 뛰어 나오시며 개조심 시키려고 내다보고 있던 중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안타가워 하셨다.
어제 누렁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 있던 터였다. 바지를 올려 보니 무릎 밑 종아리에 8cm정도 살이 흉하게 입을 벌리고 있고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아찔해지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걸을 수는 있는 건가, 앞으로 등산은 다닐 수 있을까’ 두서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병원으로 갔다. 의사선생님이 보시더니 많이 물렸다며 파상풍주사를 맞고 충분히 치료를 한 후 꿰매야 되는데 문제는 광견병 여부였다. 2주일간 개를 관찰해야 하며 유사시 그 약은 김천에는 없고 서울 국립의료원에만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개를 은근히 무서워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데 이토록 심각한 사태란 말인가, 평온하던 일상이 갑자기 진흙탕에 빠진 듯 하며 고통과 불편의 시간만 남은 것 같았다.
놀라고 아찔한 순간이 지나고 시댁에 돌아와 누렁이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광견병의 예후라도 있는가 하고.
그러나 그 누렁이는 예전처럼 맑은 눈과 늘씬한 체격을 가진 당당한 개였다. 아무도 모르게 구석진 곳에서 새끼 여섯 마리를 낳느라 모진 고통을 겪고 이제 그 새끼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일념에 불타는 어미일 뿐이었다.
왠지 누렁이가 밉지 않았다. 끼니 챙겨주던 주인집 식구를 몰라 봤다는 원망보다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고 키워 내야 할 사명을 지닌 전사처럼 늠름한 그에게 동지애적인 애정까지 느껴졌다.
어미노릇이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힘겨우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일 테니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여성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애정과 그 만큼의 피로와 그 이상의 빛나는 긍지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