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이 혁신도시로 최종확정되면서 13개 공공기관이 이전되는 농소면과 남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본지에서는 농소면과 남면 일대 170만평의 사진과 함께 농소면의 유래와 남면의 유래를 문헌에서 찾아 게재한다.(편집자 주)
△공공기관이 이전될 농소면과 남면 170만평(빨간선 안쪽).
농소면 월곡리(月谷里)
월곡 1리는 밤실(栗谷). 월천 두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율곡은 조선시대에 개령현 농소면 율곡동이었으나, 1914년에 율곡동과 농소리(용시). 남곡(藍谷). 지곡(안못골, 바깥못골)을 통합하여 월곡동이라 하였으며, 1971년에 율곡. 월천을 합하여 월곡 1동이라 하고, 1988년에 동을 리로 바꾸었다.
천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래된 마을로 여겨지며, 1510년 밀양박씨 성표가 입향하였고, 1720년 김해김씨 처철(處哲)이 선산 송림에서 이주하여 두 문중의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완산최씨도 일찍 입향하여 그 집안에서 8대 진사까지 났다 하며 문중 재실인 율곡재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나 후손은 거의 떠났다. 월천은 밤실에 살던 박희중이 1936년 병자년 수해로 집을 잃고 내 건너 이곳에다 집을 짓고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이루어졌다.
농소면 소재지로서 초등학교가 있으며, 4번 국도가 마을 앞을 동서로 지나고 동쪽 가까이에 율곡천이 북류하면서 넓은 평야지를 형성하였다. 율곡천을 사이로 동쪽은 입석리, 서쪽은 김천시 덕곡동과 무등산을 경계로 감천면 금송동과 접하고, 남쪽은 용암리, 북쪽은 월곡 2리와 접하면서 김천에서 4km 떨어져 있다. 또한 율곡천 제방을 낮추어 도로를 만들어 성주와 감천면, 조마면으로 가는 편이 편리하게 되었다.
지명의 분포로 보아 월(月)- 이 붙는 이름은 달(達)- 과 함께 높은 곳이거나 큰 곳 혹은 새로이 개척을 한 곳을 이르는 보기가 많이 있다. 여기서는 월천이 굽돌아 흐르는 어름쯤 해서 냇물의 작용으로 새롭게 생겨난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③ 용시. 농신리(農神里)
조선 인종 7년 의병 이정용이 임진왜란 후 당쟁 때문에 이곳에 은거하여 농사에 종사하면서 살았다 하여 농신리라고 한 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용시라는 사투리로 부르게 되었다.
또 하나의 전설은 이곳 주민 모두가 농사를 잘지어 신농씨(神農氏)로 불리어진 것이 농신으로 변했다고 한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남면 옥산리(玉山里)
조선시대에는 개령현 적현면(赤峴面)에 속한 옥산동인데, 1914년 지산. 석정을 통합하여 옥산동이라 하고 남면에 속하였으며, 1916년 남면사무소를 운남동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1971년 옥산 마을을 분리하여 옥산 1동이 되고, 1988년 동을 리로 고쳐 옥산 1리가 되었다. 4번 국도변 팔미에서 북으로 갈려 들어가서 400m 지점 평야지에 위치하는 남면사무소 소재지로서 각종 기관단체가 있다. 동쪽은 노고봉(346m)이 가로막고, 서쪽은 송곡천과 율곡천이 합류하면서 넓은 신강들을 안고 월곡동과 이웃하여 북쪽은 운남으로 이어진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옥산(玉山)
조선 중엽에는 이 곳에 옥이 있어 옥산(獄山)이라 하였다가 조선 말엽에 옥이 철거되자, 이 마을 주민들이 옥산(獄山)이라는 말은 한자의 뜻이 좋지 않다고 하여 구슬 옥자 옥산(玉山)으로 개칭하였다.
② 모산. 지산(地山)
약 1500년 전에 이 마을을 지나던 어떤 고승이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므로, 동네를 이루면 번창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을 이름은 못이 있으니 지산(地山)이라고 하면 좋다고 하여 현재까지 지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