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형상의 묘내(猫乃)마을
향천2리 합천마을 앞 복전교에서 궤방령 방면의 977호선 지방도로 접어들어 기날저수지를 따라 가다보면 저수지가 끝날 즈음에서 좌측 황악산 자락 큰골 아래로 기날, 묘내등으로 불리는 향천3리 마을이 나온다.
원래 묘내, 복산, 아랫궤방령 등 도로변의 3개부락이 향천3리로 속했었는데 복산은 복전2리로 통합되고 궤방령고개 아래에 있던마을인 아랫궤방령은 폐동되고 현재 오리구이집 만이 옛 마을터를 지키고 있다.
묘내마을은 1479년 김해김씨 김현(金鉉)이라는 선비가 현 마을의 서쪽 점토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와 그릇을 빚어 팔면서 살았는데 당시 마을앞에 머루와 다래 넝쿨이 많아 마을을 드나들때 기어서 다녔다하여 마을이름을 기날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주민 전선영(48세)씨에 따르면 원래 이 마을은 현재의 마을 회관으로부터 위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조선시대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한 군수가 이 마을의 형세가 고양이(猫) 형상인 것을 간파하고 쥐(鼠)의 형상인 교동 관아의 지세가 이 마을로 인해 기운이 쇠잔될 것을 우려해 현재의 위치로 마을을 내려오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현 교동 법원일대의 지형이 노서하전(老鼠下田), 즉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명당으로 유명하고 향천3리는 마을의 형세가 고양이를 닮았다하여 고양이 묘(猫)자를 따서 묘내(猫乃)라 한 것을 통해서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역사소설 황녀(皇女)의 배경지 방하재
향천2리 합천의 대항면사무소에 맞은편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한참을 올라 가다보면 소물산과 덕대산, 동구지산등 사방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방하재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1660년 김씨, 임씨, 이씨, 정씨등 네 선비가 산간오지였던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며 살다가 1700년경 황간군 황남면으로 편입되면서 방아재라는 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다하여 방아재, 방아치로 마을이름을 삼았다고 마을노인회장 장병옥 (74세)씨가 전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방하재 고개를 중심으로 아래를 방하치라하여 황간현으로 하고,윗쪽(현 대성리)을 방하라해서 김산군으로 나누는 경계로 삼기도 했다.
△방아치 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방하재 고개 전경
이 마을은 소설가 유주현이 1975년에 발간한 역사소설 황녀(皇女)의 배경지로도 등장했는데 고종황제의 숨겨둔 공주 이문명(李文銘)이 위태로운 생명을 부지하기위해 젊은 유모에게 맡겨져 김천황악산 기슭의 방앗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
그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시오리나 떨어진 산너머 운수골(운수동)에 초상이 생겼을 때 가장 포식을 했다,
그 후로 나는 사람 죽기만 기다렸는데 좀체로 인근 마을에서 죽는 사람이 없어서 서럽기만 했다.
그해 칠월에 홍역을 앓았다.
온몸에 발반이 되자 사람들은 나를 얼씬도 못하게 했다.
남의 집 문전은 얼씬도 못했으며 방앗간에서도 박초시네 헛간에서도 쫓겨났다“
이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라 하여 한말 비운에 살다간 한 공주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고장이 배경이 된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라 할 것이다.
당시 황녀 이문명이 사경을 헤매던 그 방앗간도 언제인가 헐리고 그 자리엔 마을의 이름을 알리는 낯설은 표지석이 이방인을 맞고 있다.
△소설 “황녀”의 주요 배경이 된 방아재 마을의 방앗간이 있던 자리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