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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농소면편(4)

편집국 기자 입력 2006.09.14 00:00 수정 0000.00.00 00:00

  입석(立石.선돌)


  지좌동으로 부터 국도4호선을 따라가다 밤실마을 월곡교를 지나 우회전하면 국도변의 애말리로 부터 선돌, 새터, 건너마, 꿀배미등 5개의 자연부락이 서로 이웃하여 입석마을을 이루고 있다.


  입석(立石)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을 만드는 특수부락으로 개령현 구역에 있으면서도 김산군 관할의 연명향(延命鄕)에 속한 마을이었는데 1906년 인근의 연명, 노곡, 송방과 함께 개령현 연명면으로 개편했다가 1914년 연명면이 농소면으로 통합되었다.


  이 마을은 조선 영조때 김해김씨 우선(宇善)이란 분이 상주에서 이주하고 또 경주이씨 일가가 정착하면서 현재의 입석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인근 율곡천의 범람으로 입석일대가 침수되면서 마을이 대파되었고 이때 수침(水沈)으로부터 안전하도록 지대가 높은 앞산 양지쪽으로 대거 이주하여 마을을 새로 형성하면서 마을이름을 새터라 했다.


  마을의 중심부락인 입석은 그 지명유래와 관련해서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마을에 돌부처가 세워져있어 입석이라 했다고도 하고 용암방면의 옛 마을 진입로의 북천산 자락에 바위가 튀어나와있어 입석이라 했다고 마을주민 김태권(60세)씨가 전한다.


 


 




 


△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입석이 있던 북천산 자락


 


  우리고장에서 입석이라는 지명을 가진 부락은 이곳 이외에도 봉산면 예지2리 내입석, 외입석 마을이 있는데 마을앞에 세워진 돌,즉 입석이 부락명으로 정착된 경우로  이 입석은 김산군과 황간현의 경계를 짓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농소 입석의 경우에도 개령현에 둘러싸여 섬과 같은 특수한 부락으로서의 연명향의 입지여건등을 감안해 볼 때 이 마을도 김산군과 개령현을 구분짓는 입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입석이 자연스럽게 지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회관 앞에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약사여래불이 있는데 원래 북천산 끝에 있으면서 밤실 마을쪽으로 향해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의 방향과 관련해 밤실등 이웃한 마을들과 논란이 있자 일제시대에 마을회관 옆으로 옮겼고 십 수년전 회관창고를 지으면서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허리 이하 부분이 콘크리트에 가려져 원래의 크기와 하반신의 형태를 확인할 길이 없고 또 6.25전쟁 중 총격을 받아 두상이 심하게 훼손되기는 했으나 동민들의 각별한 관심에 힘입어 오랜 풍상속에서도 그나마 보존되어 온 것이 다행인 듯 싶었다.


  엣날에는 이 불상에  불공을 들이면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입석마을 회관 앞에 모셔진 불상


 


  규모 있는 불상이 마을에 모셔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일대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수소문을 해본 결과 입석마을 앞산인 솔징이 골짜기에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절샘으로 불리는 샘터와 기와장이 출토되고 있다고 마을주민 왕태종(70세)씨가 전한다.


  국도변의 달배이 마을은 팔미(八味) 또는 애말리 등으로 불리는데 마을 인근 들판에서 달팽이가 많이 나와 마을이름을 달팽이라 부르던 것이 음이 변해서 달배이가 되었다고 한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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