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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농소면편(5)

편집국 기자 입력 2006.09.21 00:00 수정 0000.00.00 00:00

▷연명리 (연명, 수오)


  입석으로부터 성주로 이어지는 913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연명부락을 만날 수 있다.
연명리는 연명과 수오, 두 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연명은 신라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수오, 입석, 노곡과 함께 개령현 지역에 위치하면서도 김산군에 속한 연명향(延命鄕)에 딸린 특수부락의 중심부락이었다.


  1906년 연명면으로 개편되면서 이 마을을 본리(本里)라 하여 면소재지로서 1914년 연명면이 농소면에 폐합될때까지 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었다.


  연명(延命, 延明)이라는 마을의 지명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이 마을의 지세를 풍수지리로 볼 때 배(船)의 형국이라 마을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야 마을이 안전하다하여 마을 뒤 백마산 골짜기에 밧줄을 매어야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다는 속설에 따라 목숨을 잇는다는 의미의 연명(延命)이라 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밧줄을 매었다는 배밧골이라는 골짜기지명이 마을뒤에 남아있고 여러차례 수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다 1914년 연명면이 농소면에 폐합되면서부터 연명의 명자가 목숨명(命)에서 밝을명(明)자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마을의 개척과 관련해서 기록상으로는 조선 인조때 김녕김씨 복란(福蘭)이라는 분이 성주에서 이주해 마을을 개척했으며 정조때 진주강씨 택원(宅源)이란 분이 조마 강평에서 이주해 집성을 이루었다고 알려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예사롭지 않은 돌무덤과 장승이 이방인을 먼저 맞는데 두 장승 가운데 천하대장군은 오랜 풍상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연명마을 입구의 돌무덤


 


  이 마을의 장승제는 예로부터 유명했는데 10년마다 마을주민들이 인근 산의 소나무를 베어다가 유능한 목수를 구해 정성으로 지하대장군과 천하대장군을 깎아 세우고 무당을 불러 거창한 굿을 하며 두 장승을 마주 세웠다는 것.


  지난 1996년 지금의 장승을 세웠으니 마침 올해가 10년째인지라 새 장승을 세워야하는데 경비조달이 막막해 미루고만 있다고 마을주민 김종규(79세)씨는 안타까워한다.
마을입구로부터 우측, 당산 끝자락을 따라 우측으로 돌면 연명으로 딸린 작은 마을 수오동이 나온다.


  숫골, 숯골, 송방(松方) ,수오(樹梧, 水梧)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 마을의 지명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옛날  남자들이 많이 살았다하여 숫골이라 했다하고 또 마을에 소나무가 많아 송방(松方), 숯을 굽었다 하여 숯골, 마을입구에 큰 오동나무가 있어 수오라 했다고도 하는데  여러 정황을 살펴 볼 때 마을앞에 큰 오동나무가 있어 나무 수(樹)자에 오동나무 오(梧)자를 써서 수오(樹梧)라 했는데 나중에 물수(水)자 수오(水梧)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수오동은 풍수적으로 볼때 가득 차면 비워야하는 소쿠리형인데 예전에  1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의 주민들 대다수가 인근부락으로 떠나고 지금은 서너 집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노곡리(노루실)


  연명마을을 지나 성주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활굿재를 사이로 성주군 초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노곡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도 1906년까지 김산군 연명향에 속했던 부락으로 과거 관직을 그만둔 연로한 노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노년을 평온 하게 보내며 살았다하여 노리실(老夷室), 노곡(老谷)이라 했다고도 하고 또 험준한 백마산과 비백산 일대에 노루가 많아 노루실 또는 노루장(獐)자를 써서 장곡(獐谷)이라 했다고 마을이장 박정일(61세)씨가 전한다.


  이 마을은 조선 영조대에 김해김씨 석휘(碩彙)라는 분이 어모 도암에서 이주하고 정조대에 밀양박씨 유춘(有春)이란 분이 나부리라는 곳에서 이주한 이래 밀양박씨와 김해김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 마을에서 성주로 넘어가는 고개는 활굿재라 불리는데 고개가 험준하고 예부터 도적이 많아 고개를 넘고자하는 사람은 누구나 동쪽으로 세 번 절을 해야만 무사하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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