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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남면편(마을이야기.91)

관리자 기자 입력 2007.02.15 00:00 수정 0000.00.00 00:00

 ▷부상리(부상扶桑, 지경地境)


  부상고개마루에 위치한 부상과 칠곡경계의 지경 두마을로 구성된 부상리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성주에서 개령양천역을 거쳐 상주방면으로 연결되는 관로(官路)에 위치해 고려시대에 역(驛)이 설치되었던 역촌(驛村)으로 이름이 높았다.


  관련사료에 따르면 당시역에는 사창 2간, 말 6필, 역리26인이 상주했고 역에 딸린 토지,즉 둔전(屯田)이  54결이었다고 적고있다.
역의 위치는  폐교된 부상초등학교 일대로 보고 있으며 말구리, 당말리 등 말과 관련된 지명이 일부 남아있다.


  마을이장 나영대(61세)씨에 따르면 과거 부상초등학교운동장에 어사박문수(御使朴文秀)라고 적힌 비석등 수십개의 비와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은 메워지고 비석은 서울소재 모 대학에서 모두 가져갔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역이 소재했던 부상역지


 


  과거의 역(驛)은 공물을 수송하는 마필과 도로를 관리하는 것이 주임무였으나 부수적으로 관리들의 숙식을 해결해주기도 했는데 부상역에도 유명인사들이 출입하며 부상역을 노래한 유명한 시를 남겼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강혼(姜渾.1464-1519)은 성주에서 기생 은대선(銀坮仙)에 반해 부상역까지 데리고 와서 이불도 없는 부상객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부상역의 봄밤(扶桑驛春夜)’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다.


  扶桑館裏一場歡  (부상역의 한바탕 즐거움이여) 宿客無念燭燼殘  (나그네 이불도 없이 촛불은 재만 남았네) 十二巫山迷曉夢  (열두 선녀 새벽꿈에 어른거린다.) 驛樓春夜不知寒  (역루의 봄밤은 추운줄도 몰랐구나)


  야사(野史)에 전하길 훗날 기생 은대선이 연산군의 눈에 들어 궁(宮)으로 들어간 후 과거가 밝혀져 질투심이 발동한 연산군에 의해 관계를 맺은 많은 관리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강혼은 개령현 감문의 친구 정붕(鄭鵬)의 충고를 받고 일찌감치 관계를 정리한 덕분으로 목숨을 보존했다고 한다.


  부상이 갖는 교통의 요지로서의 가치는 일제시대 경부선철도가 대신, 구미 구간이 아니라 김천, 부상, 약목구간 이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흔적은 부상고개를 관통하고 있는 길이 3백미터의 금오산터널(金烏山隧道)로 남아있는데 김천방면으로 터널앞에 제방이 축조되어 절반이상이 물에 잠겨있기는 하지만 1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할만치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05년 건설된 금오산 터널 입구


 


  뒤에 부상고개 구간이 난구간으로 지적되자 일제는 비교적 평지인 아포, 구미방면으로 우회구간공사를 다시 추진해 1916년 부상철로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터널은 한국전쟁때 낙동강전선을 지휘하는 인민군임시사령부와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군 전투기가 이같은정보를 입수하고 터널에 폭격을 하기도 했다고 전 시의원 송태환씨가 전한다. 


  또 부상리는 삼한시대부터 1970년대초까지 잠업(蠶業)으로 유명했는데 1970년 고령에서 발견된 산천유집(山泉遺集)이란 자료에 가야금을 창제한 우륵(于勒)이 작곡했다는 12곡의 가야금부(伽倻琴賦) 즉 가야금노래에 부상의 명주실로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통상 신라땅으로만 일고있던 김천지방이 신라에 의해 감문국과 가야가 멸망하고 삼국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가야문화권으로서 가야와 활발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부상으로부터 국도를 따라 대구방면으로 가다 남북저수지를 지나면 경호천을 경계로 칠곡군과의 경계에 지경(地境)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금오산 아래 금오동천(金烏洞天)으로 더 잘 알려진 식당촌 입구에 자리한 마을로 영암산(鈴岩山)에는 1908년 전국의 의병1만명으로 13도창의군을 규합해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1855-1908)선생의 묘소가 있기도 하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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