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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감천면편

관리자 기자 입력 2007.03.29 00:00 수정 0000.00.00 00:00

 ▷용호2리(복호,하평,상평)


  조마면 최남단에 위치하면서 조마면 신왕리, 삼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복호,하평,상평마을은 조선시대에 성주목 신곡면에 속해있다가 1906년 김산군 신곡면이되고 1914년 감천면 용호동으로 되었다가 1949년 용호2동으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당산  자락,  고방골 입구에 위치한 복호동은 성산이씨(星山李氏) 인주공파(仁州公派) 22세손인 망룡(望龍)이란 분이 1600년대말 성주에서 복호동으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성산이씨 집성촌을 이루어왔다.


  또 밀양박씨일가들도 들어와 살면서 이름난 효자를 배출해 효열비가 마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 위치를 확일 할 길이 없다.


  마을에는 진주강씨 진사 남와(南窩) 강설(姜渫)선생과 셋째 아드님이신 이조참의 기재(耆齋) 강여호(姜汝호)선생을 모신 모원재(慕遠齋)가 마을의 중심을 잡고있다.


 



 △복호동 진주강씨 재실 모원재 전경


 


  복호라는 마을지명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고당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마을앞산의 지세가 마치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과 같다하여 엎드릴 복(伏)자에 범호(虎)자를 써서 복호(伏虎)라했다고 마을노인회장 이기택(77세)씨가 전한다.


  일설에는 신라 눌지왕때 창건된 고방사(高方寺)라는 절이 과거 이 마을 고방골에 있었는데 빈데가 들끓어 현재의 농소면 봉곡리로 옮겨갔다고 한다.


  복호동 아래에는 하평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건너편의 상평과 함께 1936년 병자년 수해때 마을아래 대방천옆 개양지들에 있었던 광평(廣平)마을이 침수되면서 현재의 상평과 하평마을로 집단이주한 것 이라고 마을주민 이덕영(77세)씨가 전한다.


 



 △복호마을 지명유래가 된 마을뒷산을 익택씨가 가리키고 있다.


 


  이 두 마을의 지명도 광평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위쪽을 상평(上平), 그 아래쪽을 하평(下平)으로 했다는 것이다.


  복호동과 함께 대대로 성산이씨 집성촌을 이루어온 하평마을은 1760년대 복호에서 광평으로 이주한 성산이씨 일가들이 정착해 형성한 마을로 이유는 알수 없으나 금뜸으로도 불린다.


  하평마을에는 성산이씨 중시조를 모신 경국재(景菊齋)라는 재실이 세워져 옛 광평마을이 있던 개양지들을 굽어보고 있다.
광평마을의 폐동과 관련하여 풍수지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래 하평마을이 있던 개양지들 일대는 풍수지리로 봤을때 물에 떠있는 돛단배의 형국으로 마을앞 대방천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마을이 물에 잠길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져왔는데 과연 1936년 병자년에 큰 비가 내리면서 하천이 범람해 마을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는 것.


  실재로 마을서쪽에 돛대골이라는 지명의 골이 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광평마을이 있던 개양지들 일대를 하평마을 성산이씨종친회 총무 이경영씨가 가리키고 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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