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문화원이 전하는 마을이야기(106)
부항면편
▷유촌1리(용촌,장터,가물리)
지례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903번 지방도변의 비룡산아래에 위치한 유촌1리는 용촌,동산,가물리등 3개의 마을로 구성되어있다.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서면, 1895년 하서면에 속했는데 1914년 용촌,장터,가물리와 인근의 버드내,죽동을 합하여 유촌리(柳村里)로 하고 신설된 부항면에 편입되었다.
유촌이라는 지명은 인근의 유촌2리 버드내마을앞 천변에 예부터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나무유(柳)자를 써서 유촌이라 했다는 것이다.
용촌마을은 마을뒷산인 비룡산(飛龍山)아래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용촌(龍村)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마을앞 부항천변에 용의 머리형상을 하고있다는 용두대(龍頭臺)로 불리는 아름다운 바위절벽이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비룡산과 마주하고있는 부항천변의 용두대 전경
비룡산은 지명에서도 암시하는 바와같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일설에 전국 8대 명당터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의성김씨 선산으로 되어있다고 마을이장 김기호(62세)씨가 전한다.
용촌과 인접하고있는 동산은 비룡산자락의 동산이라는 야산에 위치해 동산(東山)이라는 지명을 얻었는데 뒤에 이 마을에 장(場)이 서면서 장터로 불리고 있다.
동산은 1914년 부항면이 신설되면서 부항면사무소가 위치한 면소재지였는데 1959년 면사무소가 사등리로 이전될 때 유촌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어 1962년 유촌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9년 폐쇄되었다.
조금 떨어져있는 가물리(佳勿里)는 부항천과 용두대의 절경을 노래한 조선시대 작자미상의 시 “倉然夜色 玲瓏傀石 月影徘徊
佳勿流暢 .....”에서 따왔다고 알려진다.
가물리마을에서 지례방면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벼락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데 이 바위를 옛날 조장군이라고 불리는 한양조씨 집안의 한 장군이 깨려다가 본인도 죽고 집안도 기울어 타처로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온다.
실제로 바위의 끝부분이 심하게 깨어져있어 신기하기만하다.
▷유촌2리(버드내,죽동,새터)
동산마을 뒤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버드내,죽동,새터로 불리는 유촌2리가 골짜기에 자리잡고있다.
1963년 이들 세부락이 유촌2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유촌이라는 지명이 이 마을의 버드내에서 비롯되었다.
버드내는 버드나무(柳)와 하천을 뜻하는 내(川)의 합성어로 희곡리로부터 부항천으로 합류되는 하천을 버드나무가 많아 유천(柳川)이라 했는데 천변에 마을이 생기면서 유촌(柳村)으로 바뀌었다.
폐교된 유촌초등학교뒤에는 예부터 대나무가 많아 죽동(竹洞)으로볼린 마을이 있는데 옛날 자식이 없는 한 노인이 자신의 전재산을 마을에 내놓으며 매월 초하루 즉, 삭일(朔日)에 제사를 지내달라는 유언을 했다하여 초하루 삭(朔)자를 써서 삭동(朔洞),삭골이라했다고 마을이장 이대영(68)씨가 전한다.
또 그 뒤로는 새로 마을이 들어섰다하여 새터(新基)로 불리기도 하고 또 마을뒷산이 풍수지리로 볼때 꾀꼬리가 노닌다는 앵서혈(鶯捿穴)이라하여 앵서동(鶯棲洞)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앵서동의 지명유래가된 마을뒷산을 마을이장 이대영씨가 안내하고 있다.
앵서동에는 벽진이씨와 동래정씨 재실이 자리잡고 있는데 부항댐이 들어서면 수몰될 것으로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