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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부항면편

관리자 기자 입력 2007.07.26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문화원이 전하는 마을이야기(113)




부항면편




▶하대리


 (뱃들,지시,조산동,음달마,아래두대)


 월곡리와 해인리 사이에 자리한 하대리는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서면에 속하여 지시리(只是里),서장리(西匠里),하대리(下垈里)로 나뉘어 불렸는데 1895년 서면이 상,하서면으로 분동될때 하서면으로 속했고 1914년 부항면이 신설될 때 뱃들(舟坪),양지마(陽地村),음지마(陰地村),아래두대(下斗垈),지시(只是),장인촌(匠人村) 등 인근 여섯마을을 합해 하대리(下垈里)라 이름했다.


 


 하대리(下垈里)라고 하는 현재의 동명은 1914년 부항면 신설과 함께 하대리,서장리,지시리가 통합될 때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하대리의 지명을 딴 것으로 알려졌으며 하대(下垈)는  하두대(下斗垈)의 준말로 지금의 해인리로 속하는 윗두대(上垈)와 함께 마을의 지형이 곡식의 양을 측정하는 말(斗)과 흡사하게 생긴 터(垈)라는 의미이며 말의 윗부분에 해당되는 마을을 윗두대 그 아래쪽을 아래두대라 했다.


 


 하대마을 아래에는 현재 가장 큰 마을인 뱃들(舟坪)이 성재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은 풍수지리로 볼 때 마을의 사방이 지시천과 해인천의 물길로 둘러싸여 물위에 떠있는 배(舟)의 형상이라 하여 배주(舟)자에 평평할 평(坪)를 써서 주평(舟坪)이라 했다고 한다.


 


 때문에 배의 형국인 마을내에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을 내는 격이라 배가 침수되고 마을에 불운이 있다하여 이 마을에는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일체의 우물을 파지 못하고 마을밖 지시천 너머에 우물을 파고 물을 길러다 먹어야했다고 마을이장 도진엽(68세)씨가 전한다.


 


 또 마을입구에 돛대를 세워 배의 순항을 기원하는 풍습이 대대로 이어져왔는데 지금은 십 수 년전에 세운 돛대가 마을의 안녕을 담보하고 있다.












△배 형상을 한 뱃들 마을의 돛대


 뱃들 마을앞 해인천에는 시냇물이 마치 문처럼 생긴 바위를 비집고 흘러내린다하여 이름 붙혀진 석문(石門)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큰 덮게 돌이 칼로 자른 듯 깨어져있다.


 


 전설에 의하면 윗두대에 살던 한 장군이 도사를 박대하자 화가난 도사가 가문이 번성하려면 석문의 바위를 깨트리라고 속였고 이 말을 믿은 장군이 바위를 자르니 그 바위속에서 붉은 피가 흘렀고 이후 무인집안이 망해 마을을 떠났다는 것이다.












△뱃들 마을앞 부항천의 석문. 장군이 잘랐다는 바위가 인상적이다.


 뱃들마을 뒤로는 골짜기가 항아리(甁)와 같이 깊고 좁다 하여 이름 붙혀진 병목안골 초입에 지시동(只是洞)으로 불리는 오래된 마을이 있는데 난리를 피해 살만한 명당을 소개한 정감록(鄭鑑錄)에 올라있다고 전하며 번잡한 세상을 피해 들어와 살면서 “오직 지(只)”자와 “바를 시(是)”자를 써서 “오직 바르게 살겠다”는 의지를 동명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마을입구에는 수백년은 족히 됨직한 노송 몇 그루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는데 그중 한그루는 직경 둘레만도 수 미터에 달하는 거목이었는데 수년전 화재로 불에 그을린 밑둥치만이 남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뱃들마을 아래 도로변에는 조산동으로 불리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옛날 칭이(箕)와 같은 농기구들을 생산하는 장인(匠人)들의 집단거주지로 장인촌(匠人村) 또는 장촌(匠村)으로 불렸는데 일제말 지명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마을주민 이성출(사망)씨등이 주동이 되어 마을앞에 동제를 지내기위해 만든 조산(造山)이 있는것에 연유해 조산동(造山洞)으로 동명을 바꾸었다.


 


 부항천 건너 조산동 맞은편에는 음지마,음달마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에 마을이 있다하여 붙혀진 마을로 알려진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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