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미꾸라지
노경애(수필가)
골목선술집 앞에서 술 취한 두 아저씨가 대낮부터 싸움을 한다.
“이 미꾸리 같은 놈아, 또 술값 안내고 도망칠려고 했지?”
“사람 잡는 소리 그만해라. 내가 언제 그랬노?”
급기야 서로 멱살을 잡더니 육탄전까지 벌어졌다.
구경이나 난 것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고층건물에서 창문을 열고 빼꼼이 내려다보는 삼삼다방의 아가씨, 손님에게 생선을 팔던 평양댁의 시선이 선술집에 멈추었다. 나는 싸움 구경보다 미꾸라지라는 말에 귀가 열려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미꾸라지는 논도랑에서 쉽게 볼 수 있던 흔한 물고기로서 서민들의 지친 몸을 추스려주는 먹거리의 재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꾸라지를 일컫는 말은 냉정하리만큼 인색하다. 요리조리 교묘하게 잘 빠지는 사람을 ‘미꾸라지 같은 놈’이라 하고 집안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고 하며 없는 사람이 잘난 척 하면 ‘미꾸라지 용트림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빈정대는 말뿐이니 그 소리를 들은 상대방이 서슬이 퍼렇도록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미꾸라지는 아스라이 놓여있는 추억의 한 자락이다.
고향집에서 실개천을 지나 시오리쯤 걸어가면 다랑이 논이 나왔다. 그곳에는 야트막한 웅덩이가 있었는데 가뭄이 들면 아버지는 그 물을 퍼서 농사를 지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농사일을 마치고 덤벙의 물을 모조리 퍼내셨다. 작은 덤벙 속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흙에 뒤범벅이 된 크고 작은 미꾸라지가 펄떡이며 재빨리 뻘 속에 몸을 숨겼으나 아버지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들통 가득 잡은 미꾸라지에다 왕소금을 한줌 뿌렸다. 미꾸라지는 들통이 움직일 정도로 몸부림을 쳐댔고 뚜껑을 열어 보면 거품을 토해내며 서로 몸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죄를 짓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끽끽 소리를 내는 미꾸라지의 울음소리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후 나는 추어탕을 먹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서 추어탕을 끓이려고 미꾸라지를 사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춤거려진다. 미꾸라지에게 사정없이 소금을 칠 때마다 내 이웃에게 호된 질타의 말로 가슴 저미도록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되돌아본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내 가슴속에 아직 풀리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한 치 원망도 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분골쇄신하여 맛있는 추어탕을 내 놓는다. 어쩌면 미꾸라지를 일컫는 속담은 서민들이 가진 자들을 빗대서 하는 말일지도 모를 일이다.
뒤늦게 남편이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한 부인이 아이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내려왔다. 피멍이 된 아버지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대문에 싸움은 끝이 났다. 우르르 몰려왔던 사람들은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싸우던 두 아저씨도 선술집 앞에 패잔병처럼 헐떡거리며 앉아있다. 옷은 찢어지고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소금기가 배여 기진맥진하던 미꾸라지 같다. 아이 아버지가 먼저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더니 손을 내 밀며 화해를 청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꾸라지만도 못한 놈, 오죽하면 미꾸라지가 꾸중 물을 일으킬까.”
힘든 삶의 몸부림치는 어려운 사람들과 같은 처지의 미꾸라지를 옹호하는 마음이 되어 나는 속설을 뒤집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