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문화원이 전하는 마을이야기(117)
부항면편
▷파천1리 (봄내)
대야1리 갈불마을에서 우측으로 들어오다보면 구남천변에 자리한 파천1리 봄내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서면에 속하여 춘천리(春川里)라했는데 1895년 하서면으로 속하고 1914년 부항면이 신설되면서 인근의 숲실,대밭마를 합해 파천리(巴川里)로 고쳤다가 1963년 춘천이 파천1리로 분동했다.
춘천이라는 지명은 마을앞 구남천이 항상 봄날처럼 맑고 깨끗하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전하는데 지금은 춘천(春川)의 한글식 표기인 봄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을앞에는 세심대(洗心臺)로 불리는 구남천변 바위가 있는데 조선후기 노론의 영수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선생이 구남천을 찾았다가 이 바위에 올라보고는 그 절경에 감탄해하며 제자들을 불러모아 마음을 깨끗이 씻는곳이라는 뜻의 세심대라 이름했다고 전해진다.
△춘천서원과 무필봉사이에 위치한 세심대의 절경
마을이장 김승남(64세)씨는 지난 수해때 세심대에 서있던 아름다운 바위가 떠내려갔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마을중앙에는 1756년 창건된 춘천서원이 우뚝 서있는데 이 서원은 우암 선생이 세심대에 들러 강론한 것을 기념하기위해 구성의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선생이 건립했다고 알려진다.
춘천서원에는 송시열선생과 우암의 현손인 송능상(宋能相.1710-1758)을 제향하고 있는데 송능상의 수제자인 이의조를 따르던 김천지역 노론계열중에서 연안이씨 이수점(李遂漸), 하빈이씨 이천복(李天復), 벽진이씨 이덕근(李德根), 순천박씨 박상태(朴相泰), 거창신씨 신필금(愼必儉), 성산이씨 이강수(李康壽)등 6개문중 선비들이 의기투합해 계를 모아 서원을 관리하기로 약속한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우암 송시열선생과 현손 송능상을 제향하고있는 춘천서원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본디 건물은 모두 뜯기고 지금남아있는 강당은 1956년 새로 세운 건물이다.
오늘날에도 6개문중의 후손들이 매년 봄 곡우일에 서원에 모여 제를 올리며 250년전의 약속을 아름답게 이어오고 있다.
서원앞으로는 어김없이 문필봉(文筆峰)이 구남천을 사이로 서원과 마주하고 있는데 오랜풍상과 도난의 화를 요행히 피한 하마비(下馬碑)가 고즈늑하게 앉아 서원을 지킨다.
△봄내마을 입구를 지키고있는 성황당
동구밖에는 요즘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성황당이 높이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데 지금도 매년 음력1월 14일, 당집에서 온 동민이 모여 동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하는데 그 순박한 마음씨가 한없이 정겹다.
봄내마을은 1980년대말 온천개발공사로 인해 평화롭던 마을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는데 마을뒤 가마골일대는 공사중단 이후 방치된 개발의 흔적이 아직도 미련의 그늘로 남아 있는듯 하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