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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부항면(두산리)

관리자 기자 입력 2007.09.13 00:00 수정 0000.00.00 00:00

 

마을이야기(119)




부항면편




▷두산리(갈계,말미)


 


 파천리 봄내마을과  희곡리 사이의 구남천변에 위치한  두산리는 갈계,신갈계,말미등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서면에 속한 세마을이 있었는데  1914년 이들 마을을 합해 두산리(斗山里)라 하고 부항면에 편입시켰는데 1960년대에 신갈계가 수해로 폐동된 후 지금은 갈계, 말미 두마을만 남았다.


 


 이들 마을은 부항면에서도 유명한 전주이씨 집성촌으로 조선3대임금인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孝寧大君)의 6대손인 이억남(李億南)이라고하는 분이 한양에서 내려와 말미마을에 정착한 후 뒤에 광해군때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이현민(李賢民)이 인근의 갈계로 분가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전주이씨 집성을 이루었다.


 


 갈계마을은 파천 봄내방향에서 흘러오는 구남천과 안간마을에서 흘러드는 기수골 안간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부터 희곡으로 말발굽처럼 휘어들어가는 지점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희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서 바라본 갈계마을 전경




 


 갈계와 말미 두 마을 사이에 자리잡은 앞산으로 인해 갈계와 말미라는 지명이 생긴 것으로 보고있다.


 


 이 산은 예로부터 말(馬)의 형상을 하고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갈계마을이 자리잡고 있는지점이 말의 목덜미부분에 해당되어 말의 목에 난 긴 털을 뜻하는 갈기라 했는데 뒤에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갈계로 적었다고도 하고 목마른 말이 구남천물을 먹는 형상이라하여 목마를갈(渴)자에 시내계(溪)자를 써서 갈계라 했다고도 전한다.


 


 이마을에서 희곡으로 일제시대에 길을 낼때 마을주민들이 말의 목을 끊는것이라하여 격렬한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당시 공사도중 흙이 핏빛으로 변하고 인부들이 다치는등 이적이 일어나기도했다는 것.


 


 따라서 마산리라고 하는 지명도 말의 형상이라 마산(馬山)으로 불린 이 산으로 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제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이 새로 개편되면서 이 산 지명을 따서 마산리로 하려다 인근의 구성면 마산리와의 혼란을 피하기위해 음(音)이 같은 말두(斗)자를 써서 두산리(斗山里)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말을 닮은 갈계마을 앞산인 마산(馬山)의 목부분에 해당되는 지점을 마을주민 백준팔(69세)씨가 가리키고있다.




 마을앞 구남천과 안간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지통골이라 불리는지점에 한지(韓紙)를 만드는 큰 공방이 있었는데 이것은 안간천에서 흘러드는 물이 유난히 차서 질좋은 한지가 생산됐다고 한다.


 


 갈계마을에서 좁은 도로를 따라 말의 목에 해당되는 마산고개를 넘으면 말의 꼬리에 해당된다는 말미마을에 닿는다.


 


 갈계마을보다 앞서 개척된 마을로 말의 꼬리에 해당되는 지점에 마을이 들어섰다하여 말마(馬)자에 꼬리미(尾)자를 써서 마미(馬尾)라 했는데 세월이 흘러 말미(末尾)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말꼬리에 해당되는 지점에 마을이 들어섰다하여 말미란 지명을 얻었다는 말미마을 전경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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