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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지례면편(도곡2리)

관리자 기자 입력 2007.11.01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24)




지례면편




▷도곡2리(송천,신평)


부항과의 갈림길인 상부삼거리에서 대덕방향으로 국도3호선을 따라가다 첫 번째 만날 수 있는 마을인 도곡2리는 송천과 신평 두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상현면으로 속했었는데 1914년 이웃한 가좌,주치골,문질,도곡리를 합해 도곡리라하고 지례면으로 했다가 1971년 송천,신평,가좌가 도곡2리로 하고 1993년 가좌가 3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의봉아래 자리잡은 신평은 조선 중종때 상부리에 살던 성산전씨 전시우(全始雨)라는 선비가 현재의 신평마을로 이주하면서 송천마을위에 새로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웃새터(上新基)라 했는데 뒤에 헌종때 전진욱(全鎭旭)이란 후손이 신평(新坪)으로 고쳤다고 한다.


또 달리 밀밤,밀뱅이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이 마을에 옛날 밀농사를 많이 지었고 뒷산인 문의봉에 밤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은 별칭이라고 신평마을 노인회장 전재기(79세)씨가 전한다.













△신평마을노인회장 전재기씨가 신평마을에 성산전씨가 들어와 살게된 경위를 설명하고있다.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이 유명한 문의봉 이다.





 신평과 상부리 사이에 지례공단이 자리한 송천마을은 도래실에서 이주해 새로 마을이 생겼다하여 처음엔 새터라 하다가 임진왜란때 피난 온 한 선비가 소나무가 우거진 문의봉과 맑은 감천변에 자리잡은 마을이라하여 송천(松川)이라 개명해 주었다고 전한다.


문의봉,문암산 등으로 불리는 마을뒷산은 향교,서원,서당등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학도들의 학풍을 진작시킬 것을 염원하며 공통적인 이름이 붙혀지는데 문의봉 역시 지례향교와 마주하고있어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불렸다.


문의산에는 장수가 바위로 턱걸이를 했다는 장수턱걸이 바위가 솟아있어 이채롭다.




▷도곡3리(가좌)


 1993년 도곡2리에서 3리로 분동된 가좌마을은 신촌에서 감천너머 여시밭골과 큰골 초입에 자리잡은 마을로 남평문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가좌라는 마을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설이 있는데 먼저 이마을이 엣날부터 남면 부상과 함께 김천에서도 유명한 양잠지인 관계로 더할 가(加)자에 누에잠(蠶)자를 써서 가잠(加蠶)이라 했다가 뒤에 음이 변해 가좌(加佐)로 되었다는 설이다.


 실제 마을주민 이래복(62세)씨를 비롯한 많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볼때 양잠이 크게 번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다른 설은 이 마을 뒷산인 가좌고개가 예로부터 해인사에서 직지사를 연결하는 최단코스로 스님들이 주로 고개를 이용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도래실과 주치밭골을 거쳐 직지사로 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옛날 고개를 지나던 한 고승이 마을입구에 있던 고목아래서 휴식한 후 일행들을 재촉하며 “가자, 어서 저 고개를 넘어가자”고 재촉했다하여 가자고개라는 이름을 얻었고 마을이름도 가자로 했다가 뒤에 가좌로 변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해인사에서 직지사를 내왕하는 스님들이 주로이용했다는 가좌고개. 지금도 옛 고갯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한다.




 가좌마을 남쪽 감천변에는 석수바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있어 절경을 자랑했다는데 지난 2002년 수해때 아름다운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며 마을 주민 이래복씨는 안타까워 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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