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상 대덕 과신농장 대표(지체장애인 협 회 김천시지회 부회장)와 지체장애인 협회 앞에서 사진 찰영... |
역경 이겨낸
장애우를 찾아서
김인상 대덕 광신농장 대표
‘장애란 몸이 아닌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아름다웠던 나의 17년은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했다. 내가 나병(한센병)이라니? 믿을 수도 믿어지지도 않는 현실 앞에서 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다. 그렇게 내 삶을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고향을 떠나 죽기 위해 찾아든 음성나환자 정착촌에서 고향 분을 만났다. 죽음으로서 인생을 마치고 싶은 마음뿐이던 내게 그분은 치료와 거주할 안식처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난 새 삶을 시작했고 정상인 부인을 만나 가정도 꾸리며 행복한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다시 내 인생에 어둠이 드리웠다. 하지만 이런 내게 무슨 복이 있어서 인지 다시 두 번째 부인을 맞았다. 그녀 역시 정상인이었다.
내 모습을 보면 몸부터 사리는 여느 사람들과 다른 착한 부인을 둘씩이나 얻은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그런 사람을 잃었다. 난 정말 불행한 사람일까? 내 주위 사람에게 불행을 주는 것일까? 그런 고통스런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지금의 3번째 부인이 다가왔다.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정상인이었다.
처음 양계업을 시작할 때 1천 500수였던 것이 이제는 1만수가 넘는다. 물론 두 손이 불편한 나에게 양계업조차도 힘이 든다. 계란을 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나의 불편한 몸 때문에 아내가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밝은 나의 아내를 볼 때면 정말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대덕 광신농장의 대표가 되어 있다.
김인상(68세)씨가 나병(한센병)이라는 판명을 받고 살아온 인생을 짧게 서술해 보았다.
장애인 사이에서도 나병은 또 다른 장애
장애란 어떤 이유에서든 어떠한 종류에 상관없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병은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는 장애라 지금도 관내 나병환자 99%가 사회와 등을 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일 관계로 거창면을 찾았을 때입니다. 하반신이 없는 장애인이 두 팔을 다리 삼아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죠. 거기다 젊은 아가씨인지라 너무 안타까운 생각에 차에서 내려 ‘가는 방향까지 태워드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가씨는 나를 위아래로 처다 보고는 내가 나병환자란 것을 알고는 ‘싫다’고 대답하더군요. 전 정말 절망했습니다. 솔직히 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한 두명만 있어도 길을 돌아갔으니까요. 하지만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일을 하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여행도 가고 말이지요.”
하지만 김인상씨는 아직도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는 불편하다고 했다. 굳이 함께하게 되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 조심스럽다. 물론 자신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혹여 같이 있는 사람들이 심적으로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
‘가장높이 나는 새가 넓게 멀리 볼 수 있다’, ‘받기를 바라지 말고 남에게 먼저 줄줄 알자’,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야 한다’, ‘자녀를 공부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자’, ‘장애라는 핑계로 가난을 대물림 하지말자’를 매일 자기 자신에게 각인 시키는 김인상씨.
장애란 것은 남의 시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부족에서 생긴다는 것이 김인상씨의 평소 생각이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해’, ‘누군가가 날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다. 이런 생각들이 지금에 그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거기다 김 대표는 자신을 멸시하는 사람에게 줄줄 아는 사람이다. 앞에서 언급 한적 있는 거창에서 만난 아가씨일도 그렇다. 김대표에게 그 일은 상처가 됐다.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고도 그는 돌아와 휠체어 한 대를 샀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면의 면장에게 부탁을 했다. 부탁인 즉 휠체어를 거창에서 만난 그 아가씨에게 전해 줄 방법을 알아놓았으니 대신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이렇게도 좋은 것인지 그때 알았다”고 그 때의 심정을 말했다. 그리고 “그 것이 계기가 되어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주는 기쁨을 죽는 날까지 느끼고 살고 싶다”며 그는 웃고 있었다.
정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