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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조마면편(첫회)

관리자 기자 입력 2007.12.13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30)




조마면편(첫회)




▷조마면 개관


동쪽으로 감천면과 성주군 벽진면, 남으로 지례면과 성주군 금수면, 서쪽으로 구성면, 북쪽으로 양천동과 접하고 있는 조마면은 염속산과 가제산을 발원으로 하는 강곡천이 감천으로 합류되고 천변에 도암들,장암들,신안들 등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집성촌으로는 강곡1리 금단의 선산김씨, 강곡2리 강바대의 진주강씨, 신곡3리의 순천박씨, 신안리 죽정의 성산배씨, 신안4리 밧새래의 화순최씨 등이다.


조마면은 고구려의 명장 강이식장군의 후손으로 한강(寒岡)선생의 제자로 문명을 떨치고 임진왜란때 소실된 김산향교를  중수한 강설(姜渫)선생과 충무공의 부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배흥립(裵興立장군, 효부 함양오씨와 덕산이씨를 배출한 충절과 효행의 고장으로 전해진다.


특히 조마면은 감문국과 함께 삼한시대에 우리고장에 터를 잡았던 소국인 주조마국(走助馬國)이 성립되었던 곳으로 중국사서인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誌東夷傳)에 기록된 변한계 12국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으며 장암리와 강곡리에서 가야토기가 출토되고서기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의해 토벌될 때 주조마국이 함께 토멸된 사실로 미루어 이 지방이 가야와 밀접한 교류를 맺어왔음이 밝혀졌다.













감천에서 바라본 조마면소재지인


 강곡1리 금단마을 



▷ 강곡1리(금단,엉거실)


조마면소재지인 강곡1리는 금단과 엉거실 두 마을로 나뉘어있는데 삼한시대에 주조마국에 속했는데 서기562년 신라에 병합된 이래 조마부곡(助馬部曲)을 거쳐 조선시대말까지 김산군 조마남면에 속한 구곡(九曲)이라 칭하다가 1914년 이웃한 강평과 합하여 강평의 강(江)자와 구곡의 곡(曲)을 합해 강곡(江曲)이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개령면 남전과 함께 선산김씨 농암공파(籠岩公派)집성촌으로 선산김씨 희택(希澤)이란 분이 조선 헌종때 선산에서 입향한 이래 대대로 집성을 이루어 왔다.


구곡이라는 지명은 처음 마을을 세울때 아홉구비의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자리를 잡았다하여 구곡(九曲)이라 했다고 하며 달리 금단(錦丹)이라 한 것은 마을앞 감천이 비단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하여 비단금(錦)자에 붉을단(丹)자를 써서 금단이라 했는데 뒤에 음이 변해 금다이 또는 금단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금단마을과 이웃하고 있는 월곡은 1936년 병자년 수해때 인근 장암이 큰 수해를 입게 되자 주민들이 이전해 새로 형성된 마을로 알려지는데 마을앞 감천에 비친 달이 아름답다하여 월곡(月谷)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월이 엉거로 변해 엉거실 또는 얼거실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선산김씨 일가가 집성을 이루게 된 사연과 관련한 제미있는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원래 마을에 터를 잡고있던 모(某) 성씨가 시주 온 스님을 박대하게 되었고 서운한 스님이 꾀를내어 가문의 번성을 핑계로 명당에 자리 잡고있는 조상의 묘소를 이장할 것을 권했다는 것.













△ 선산김씨 제실인 경락당

현혹된 집안에서 스님의 말대로 묘소를 파보았더니 연기가 나면서 학이 솟아올랐고 이후부터 집안이 쇠잔해져 타처로 흩어지고 뒤늦게 들어온 선산김씨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뒤 가마골에는 선산김씨 재실인 경락당(景樂堂)이 세워져 김취성(金就成)선생을 제향하고 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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