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마을이야기(136)
조마면편
▷대방2리(성궁, 가곡)
조선시대까지 김산군 남천면으로 속하여 성궁, 가곡이라 불린 이 마을은 1914년 인근마을과 합하여 조마면 대방동이라 했다가 1962년 성궁, 가곡이 대방2동으로 분동되었다.
성궁은 김해김씨 집성촌으로 조선 헌종 때 김해김씨 판서공파 김만옥(金萬玉)이라는 분이 성주벽진에서 이주해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마을회관자리에 활을 쏘는 활터가 있었다 하여 살필성(省)자에 활궁(弓)자를 써서 성궁(省弓)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회관과 폐교된 대방초등학교 일대를 현재도 사청걸이라 불리고 있는데 사청골(射廳谷)은 곧 활터를 의미한다고 마을주민 김기만(67세)씨가 전한다.
△조선시대까지 활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성궁마을회관일대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을 비롯해서 대방리 일대에는 활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많은데 성궁에서 쏜 활을 주웠다는 마을 맞은편 글씨산 자락 주음실은 성궁에서 쏜 화살을 주웠다는 골짜기를 이름이며 대방1리 궁항은 활목, 활미기로 불리며 성주와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는 살티재, 살치재로 불리며 화살전(箭)자를 써서 전령(箭嶺)이라 불리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성궁에서 쏜 화살이 날아가 주웠다고 전해지는 주음실 골짜기전경
또 성궁마을은 조선시대까지 남천면의 소재지로서 지금의 마을회관자리에 면사무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달리 남천골로도 불렸고 마을 앞 냇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비가 한결 같이 내렸다하여 여우내(如雨川)라고도 불렸다.
이 마을은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성궁에서 가곡마을 방향의 옛 도로변에 청풍김씨 효행비가 높이 서서 행인을 맞는다.
△성궁마을의 자랑인 청풍김씨효행비와 비각
청풍김씨는 김해김씨 김상인(金相仁)의 처(妻)로 앞을 보지못하는 시조모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여 인근 동리에 칭송이 자자했는데 마침내 지역유림에서 공론을 모아 표려비(表閭碑)를 내려 귀감을 삼게 했다고 김해김씨 판서공파 19대손인 김기만(67세)씨가 전한다.
성궁마을 옆으로는 대방2리로 속한 뱃거마, 가곡으로 불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뱃거마는 본동인 성궁마을밖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의미로 ‘밖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밖의마가 변음이 되어 뱃거마로 된 것이라고 한다.
△가죽나무가 많았다고 전해지는 가곡마을전경
이 마을의 또 다른 지명인 가곡은 마을에 예부터 가죽나무가 많아 가죽골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을 줄여 가곡이라 하고 한자로 나뭇가지 가(柯)자를 써서 가곡(柯谷)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글/김천문화운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