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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대덕면편(첫회)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3.20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 마을이야기(142)
대덕면편(첫회)


 


▷대덕면 개관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의 접경을 이루는 대덕면은 김천의 남단에 자리한 면으로 관내에 수도산, 월매산, 대덕산, 국사봉 등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루며 덕산천과 감주천이 대덕천으로 합류한다.
 


 신라시대에는 지품천현에 속했다가 757년 개령군 지례현이 되고 고려 현종9년(1018년)에 성주 경산부로 이속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지례현 남면, 1895년에 상남, 하남, 외남 등 3개면으로 분동되었다.
 


 1914년 3개 면을 합해 대덕면으로 개칭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덕면은 3개 도의 접경에 위치해 예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는데 특히 우두령은 임진왜란과 동학농민항쟁, 6·25사변 등 역사의 고비 때마다 호국의 보루가 되기도 했다.
 


 또 조룡리에는 단종 복위운동을 주도한 백촌 김문기 선생의 후손인 김녕김씨 후손들이 집거하며 선생을 추향하는 섬계서원이 있으며 우리고장의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관기1리(관터,웃장터)


  조선시대에 지례현 상남면으로 속했던 관기리는 1914년 인근의 장곡, 호미와 아랫·웃장터를 합해 관기리라 했고 1960년 관터와  웃장터가 관기1리로 분동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기라고 하는 지명은 관기2리로 속하는 인근의 장곡마을에 조선시대까지 장곡역이 있은 관계로 이 마을에 역의 관사로 이용된 두의곡원(頭衣谷院)이 있어 관터라 불리고 한자로 객사관(館)자에 터기(基)자를 써서 관기(館基)라 했다고 마을주민이자 농협 조합장을 역임한 이규일씨가 전한다.












▲  △조선시대 말까지 장곡역(長谷驛)의 관리들이 거주하는 관사와 관용숙소로 이용된 두이곡원이 있었던 관터마을 전경


 원래의 두의곡원은 지금의 관터마을회관 인근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원(院)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고 다만 관터라는 지명으로만 남아있다.


  또 대덕지서에서 대덕중학교 사이에 시장이 섰다하여 장터로 불렸는데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하천이 범람해 매몰된 후 시장이 지금의 면소재지인 관기2리로 옮기고 원래장이 있던 마을을 웃장터, 뒤에 옮긴 마을을 아랫장터라 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장과 면사무소 이전을 두고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대립할 때 주민간 줄다리기를 해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병자년 수해 때 유실되기 전까지 장이섰다는 웃장터 일대.



 


 지금은 교회와 사과밭으로 변했다.


 웃장터에서 대덕중학교 방면 사이의 덕산천과 화전천이 합류하는 지점사이에는 수정봉(水晶峰)으로 불리는 야산이 있는데 예부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으로 서산정씨집안에서 초상이 나서 땅을 팠더니 푸른 돌판이 있어 이를 세우니 학이 날아 오르려했다는 것.
 


 놀란 인부들이 다시 수정을 덮을 때 학의 다리가 돌에 끼어 학이 다쳤는데 이후부터 집안에 흉흉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연화부수형의 명당으로 전해지는 수정봉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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