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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대덕면편(관기2.3리)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3.27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43)
대덕면편


▷관기2리(장곡,아랫장터)


 현재의 대덕면소재지인 관기2리는 장곡과 아랫장터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려시대까지 이 마을에 두의곡역(頭衣谷驛)이 있어 두의곡부국(頭衣谷部曲)으로 불리다 조선시대에 들어 역 이름을 장곡역(長谷驛)으로 고치면서 마을이름도 장곡으로 바뀌고 지례현 남면 관할로 속하게 되었다.


 1914년에 인근의 관터, 호미마을과 합해져 관기(館基)로 했다가 1936년 병자년 수해때 관터 일대의 장터가 유실되면서 지금의 아랫장터로 시장을 옮기면서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1960년 장곡과 아랫장터가 관기2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랫장터로부터 대덕초등학교 방향으로 안쪽에 자리잡은 장곡마을은 마을뒷산인 송시봉(송수봉) 골짜기가 워낙 깊어 긴 장(長)자에 골 곡(谷)자를 써서 장곡(長谷)이라 했는데 골짜기의 지명이 역과 마을의 지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까지 장곡역이 있었던 터를 마을주민 이규일씨가 안내하고있다.


 


 향지(鄕誌)에 따르면 장곡역은 환곡이나 공물을 임시 보관하는 사창(社倉), 즉 창고가 2간, 역을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경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경작하던 전답이 31결(약85,000평), 중간크기의 말이 2필, 작은 말이 2필, 역의 직원에 해당하는 역리(驛吏)가 25인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곡마을 아래의 국도 3호선 변에 위치한 아랫장터는 대덕면소재지로 1930년대까지만 해도 길손들을 상대하던 주막이 몇 채 있을 뿐이었으나 1936년 병자년 수해때 관터에 딸린 장터(지금의 대덕중학교와 대덕지서사이)가 매몰되자 주막일대에 5일장이 서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뒤에 국도와 무주방면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일약 면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아랫장터라는 지명은 원래 장이 섰던 구장터(웃장터)와 구분하기위해 아랫장터라 한 것이 마을의 지명이 되었다.


 


▷호미금계(虎尾禁鷄)의 관기3리(호미)


 1960년 관기리에서 3리로 분동된 호미마을은 마을뒷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가 길게 누워있는 와호형(臥虎形)이라 호미산(虎尾山)이라 했는데 마을이 호랑이 꼬리부분에 위치해 있다하여 호랑이호(虎)자에 꼬리미(尾)자를 써서 호미(虎尾)라 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는 예부터 호미금계(虎尾禁鷄) 즉, 호미마을에는 닭을 금한다라는 이야기가 불문율(不文律)처럼 전해오는데 산 아랫마을에서 닭 울음소리가 나면 새벽이 온 줄 알고 호랑이가 도망을 가게 되어 마을의 운세가 쇠퇴한다하여 닭을 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랑이의 꼬리부분에 마을이 자리잡았다하여 이름 붙혀진 호미마을 전경. 마을 뒤로 호미산이 보인다.


 


 마을주민 박수임(66세)씨는 예전에 마을주민 중 몰래 닭을 기르다 발각이 되어 혼쭐이 난적이 몇 번 있기도 했지만 호미마을에서 닭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은 마을의 법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호미산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정성은  각별하여 이 산에 산소를 들이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하여 일체 금 하고 있으며 또 산중턱에 솟아있는 바위를 장닭바위라 이름 붙이고  바위가 무너지지 않게 덧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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