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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대덕면편(중산2리)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4.11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45)
대덕면편


 


 ▷중산2리(다화)


 조선시대에 지례현 남면으로 속하여 다화, 다부실로 불린 중산2리는 1895년 하남면, 1914년 김천군 중산, 1960년 중산2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초 이천서씨 남계(南溪) 서질(徐질)이 지례에서 들어와 정착한 이래 대대로 이천서씨와 김해김씨, 은진송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왔다.


 다부실이라는 마을의 지명은 큰 부자가 많이 나오라는 뜻을 담아 많을 다(多)자에 넉넉할 부(富)자를 써서 다부실이라 했다하고 또 다화는 마을 뒷산의 형세가 한자로 마음심(心)자를 닮아 꽂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라는 뜻으로 많을 다(多)에 꽂화(花)자를 써서 다화(多花)라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김해김씨, 이천서씨, 은진송씨 등 마을의 대표적인 집안마다 이름난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입구의 대덕천변에는 김해김씨 만억(萬億)의 처 성산이씨 부인의 효열비가 섰는데 부인은 1830년 시댁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가다 날아가는 꿩을 보고 시부모님이 꿩고기를 좋아함을 탄식하니 꿩이 품속으로 날아들어 발걸음을 돌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효부로 알려지고 있다.













△대덕천변에 세워진 김해김씨 만억의 처 성산이씨부인 효열비


 


 또 이천서씨 가문의 서즐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고향 지례로 낙향해 절개를 지킨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1371-?) 선생의 제자로 스승이 졸하자 윤은보와 함께 3년을 시묘하며 부보의 예로써 정성을 다하여 세종대왕이 정려를 내리고 사제지간의 갸륵한 행적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실어 만고의 표본으로 삼게 했다.



 남계선생의 묘소는 마을 뒷산인 양지말 무시밭골에 있는데 공의 16대손인 마을주민 서성두(76세)씨의 안내로 묘소를 참배할 수 있었다.













△스승에 대한 지극한 봉양으로 삼강행실도에 그 행적이 수록된 남계 서즐 선생의 묘소


 


 마을 뒤 안쪽으로는 화계정사(華溪精舍)가 산비탈에 서있는데 바로 은진송씨 남촌(南村) 송천상(宋天祥· 1556-1626)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공은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지례향교가 화염에 휩싸이자 의성김씨 관란재(觀瀾齋) 김여권(金汝權· 1557-1640) 선생과 함께 오성위패(五聖位牌)를 모셔내어 화를 면하게 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남촌 송천상선생을 제향하고 있는 화계정사전경


 


 


 1860년(철종 11년)에 지역 유림들이 모여 편히 제사드릴 곳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화계정사를 세우니 거창인 심석오가 상량문을 짓고 영남인으로서 2백년 만에 정승에 오른 안동 풍산류씨 류후조(柳厚祚)선생이 봉안제문과 향사축문을 지어 더욱 유명해졌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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