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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대덕면편(가례리)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4.17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 마을이야기(146)
대덕면편


- 가례리(가례.새터.석정.덕봉)


 대덕면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자리한 가례리는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남면으로 속하여 가례, 천곡, 석정등 크게 세 마을이었는데 1895년 남면이 나뉘면서 하남면으로 속하게 되고 1914년 인근의 덕봉을 합하여 가례리라 하고 대덕면으로 편입되었다.


 가례마을은 거창신씨(居昌愼氏) 형만(亨萬)이라는 분이 이주해 살면서 거창신씨 집성촌을 형성했다고 하는데 뒤에 동래정씨와 연안이씨등이 이거했다.


 가례라는 마을의 지명은 거창신씨 가문이 뿌리를 내리면서 후손들이 무릇 예절을 중시하라는 뜻을 담아 더할 가(加)자에 예절 예(禮)자를 써서 가례(加禮)라 했다고 알려진다.


 원래의 가례마을은 마을뒤에 있는 큰가래골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마을에 흉흉한 일이 자주 일어나 현재의 위치로 집단 이주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이주에 따른 전설이 특이하다.


 옛날 가례마을의 한 부잣집에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왔는데 주인이 인색하여 스님을 심하게 박대했다는 것.


 이에 스님이 떠나면서 마을앞 가마바위를 가리키며 “저 바위를 깨어버리면 마을에 부자와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에 부자는 주민을 동원해 바위를 깨뜨렸는데 바위속에서 학이 솟아나와 지금의 중산마을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원래 가례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원가례골 전경



 


 이때부터 가례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속출했고 결국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는 이야기인데 당시 깨트리던 바위가 지금의 큰가래골 입구에 있는 가마바위를 가리킨다고 마을이장 박지효(57세)씨가 전한다.


 뒤에 사람들은 가마라는 것은 예로부터 귀인(貴人)들이 타는 것인데 그러한 형상을 닮은 바위가 마을입구에 있다는 것은 아주 길한 징조임에도 박대를 당한 스님이 마을을 혼내주기 위한 헛 예언을 했음에도 어리석은 부자가 바위를 깨뜨리는 바람에 결국 마을이 폐동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가례마을의 재앙은 이후에도 이어져 1936년 병자년 수해때 마을이 큰 수해를 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가례마을 옆 새터가 수해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새로 정착해 형성된 마을이다.


 가례마을의 맞은편 국도변에는 마을주민 신게재(81세)씨의 5대조의 호(號)를 따서 이름 붙혔다는 덕봉(德峰)산이 있는데 산밑에 윗덕봉, 아랫덕봉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한 집만이 남아 마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석정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돌


 


 


 조룡마을과의 경계에는 석정으로 불리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마을입구에 여러 사람이 올라앉아 쉴 수 있는 바위가 있어 돌석(石)자에 정자정(亭)자를 써서 석정(石亭)이라 했다고 한다.


 석정에는 조선중엽 남인학파 예학의 지도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자주 들러 학문을 강론하고 갔음을 기념하는 한강선생장루지태비(寒岡先生杖屢之台碑)가 섰고 뒤로는 선생의 제자들이 세웠다는 석곡서당(石谷書堂)이 거룩하게 길손을 맞는다.












 △한강 정구 선생이 학문을 강론하고 갔다는 석곡서당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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