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마을이야기(149)
▷▷추량1리(가래실)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남면 추량(秋良) 또는 추장(秋長)으로 불린 이 마을은 1895년 남면이 삼분 될 때 하남면으로 속하고 1914년 인근의 솔밭골, 주막담, 지푸이와 합해 추량리라 바꾸고 대덕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60년 추량1리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쪽으로 고드름산을 경계로 증산면과 나뉘고 서쪽으로 노루목재를 사이로 관기리, 북쪽으로 중산리와나뉘어있다.
△노루목재에서 바라본 가래실마을
추량1리는 가래실이라고 불리는데 아랫담, 웃담, 양지담 등 셋으로 나뉜 마을의 형상이 떡가래처럼 생겼다하여 가래실이라 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와전된 것으로 보이며 서산정씨와 성산배씨 등 이름난 선비들이 배출된 유서깊은 마을인 점을 감안할 때 가문의 예법을 중시하는 의미를 담아 가례(家禮) 또는 가례(嘉禮)라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이 마을은 1400년대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역임한 서산정씨 11세손 행촌(杏村) 정처우(鄭處祐)라고 하는 분이 충남 서산에서 이거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서산정씨 집성촌을 형성해 왔는데 행촌선생이 은행나무를 좋아해 호를 은행나무행(杏)자를 써서 행촌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가래실마을의 자랑인 은행나무
마을 중앙에는 처음 마을을 열 때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마을의 자랑으로 서있는데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 은행나무의 잎이 가을에 한꺼번에 떨어지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서서히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추량2리 (솔밭골, 주막담, 지푸이)
1960년 추량리로 부터 분동된 추량2리는 솔밭골, 주막담, 지푸이등 세 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추량1리 가래실로부터 증산면 방향의 가릇재로 향하는 지방도변에 좌우로 자리잡고 있다.
솔밭골은 한자로 송전(松田)으로 적는데 일설에 지세필(池世泌)이라는 분이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주변에 소나무가 무성해 솔밭골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마을인 주막담은 마을에 옛날 주막이 있어 주막담이라 했는데 마을뒷산인 도라지봉 자락에 흰 돌 즉 큰 차돌이 있어 백석(白石)이라 적고 차돌백이라고도 불렀다고 마을이장 하천일씨가 전한다.
가릇재 초입에는 지푸이, 황성(黃城)으로 불리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가릇재 아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깊다”는 의미의 사투리인 “지푸이”라는 동명을 얻었고 가을이면 마을주변의 계곡과 산이 단풍에 쌓여 노란 성에 둘러싸인 것과 같다하여 누를황(黃)자에 성성(城)자를 써서 황성(黃城)이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뒤로는 증산으로 넘어가는 가릇재가 또아리를 틀며 굼실댄다.
△증산으로 이어지는 가릇재 전경 멀리 지푸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