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마을이야기(151)
▷덕산1리(덕산)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남면으로 속하다 1895년 상남면, 1914년 덕산과 주치가 합해져 대덕면 덕산리라 했다가 1960년 덕산1로로 분동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김념김씨 집성촌으로 김숙연(金淑蓮)이라는 분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백촌 김문기선생과의 연좌를 피해 구성면 상거에 피해 있다가 후손 김풍(金豊 )이 덕산으로 이거한 후 대대로 김녕김씨 충의공파 집성촌을 형성해 오고있다.
덕산(德山)이라는 마을의 지명은 마을앞에 대덕산(大德山)이라는 큰 산이 있어 덕산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으로 전해지며 일설에 이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덕을 쌓고 살자는 염원을 담은 것 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입구 조산걸에는 장릉참봉김녕김공휘경직효행비가 우뚝 서있는데 김경직은 아버지 김석용과 함께 대덕산에 싸리나무를 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것을 추격하여 부친의 시신을 찾아왔다고 하며 장례를 마친 후 원수를 갚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리고 대덕산 곳곳에 함정을 파 호랑이를 잡았는데 세 번째 잡은 호랑이가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였다고 전해진다.
| |||
이 마을중앙의 느티나무는 예부터 한꺼번에 잎이 한꺼번에 피면 흉년이 들고 두 번으로 나뉘어 피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입구로부터 도로변에는 상덕재, 경앙재 등 유서 깊은 재실이 즐비한 유서깊은 마을이다.
▷덕산2리(옴배미)
전라북도 무주군과 주치령을 사이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덕산2리는 임진왜란때 피난을 와 정착한 수원백씨 일가들이 마을을 개척한 이래 옴배미, 주치(走峙)등으로 불리며 덕산천을 중심으로 양지말, 건너말, 안마을로 나뉘어있다.
△덕산2리 옴배미 마을 전경 |
옴배미라는 지명은 마을이 대덕산과 추치령, 국사봉에 둘러싸여 유난히 포근하다하여 따뜻할 온(溫)자를 써고 일정한 면적의 땅을 뜻하는 사투리인 “배미”와 합해 온배미라 한 것이라 알려진다.
또 주티,주치라는 것은 무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예부터 산적이 자주 출몰해 고개에 산적이 나타나면 이 마을로 빨리 달려와야 살수 있다고 하여 달릴주(走)자에 우뚝 솟을 치(峙)자를 써서 주치(走峙)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지말 도로변의 효열비는 남편의 병구환을 지극정성으로 하여 칭송이 자자했던 인동장씨부인을 기리는 비석으로 남편 김경진을 추모하며 세운 제실 율암정(栗巖亭)과 나란히 서서 건너말을 굽어보고 섰다.
△후손 김원배씨가 인동장씨부인의 효열비를 안내하고있다. |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