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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김천마을이야기(152)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5.29 00:00 수정 0000.00.00 00:00

대덕면편

 

▷외감리(외감.절골), 내감리(진터.내감)




 연화리 마을의 쌍호정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난 좁다란 포장길로접어들면 대덕산과 국사봉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 펼쳐진 감주계곡으로 들어간다.


 


 감주골로 통칭되는 네 마을로 골 입구로부터 외감,절골(사곡),진터(중감),내감(웃감주)마을인데 감주는 원래 골이 깊은 계곡이라 해서 산 깊을 감(嵌)자에 시내계(溪)자를 써서 감계(嵌溪)라 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달감(甘)자에 고을주(州)자를 써서 감주(甘州)라 적고있다.












▲ 내감마을 입구에 세워진 감주골 찬가비


 이같은 사연은 내감리의 중감마을이 예부터 군사 요충지로 군진(軍陣)이 주둔했던 병영마을로 지금도 진터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병영에서 쌀 씻는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면 물색깔이 희게 변하고 쌀뜨물이 진해 그 맛이 달았다하여 쌀뜨물 감자에 고을주자를 써서 감주라 했다고도 한다.


외감은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남면으로 속했고 1895년 남면이 삼분될 때 상남면으로 딸리고 1914년 대덕면으로 개칭할 때 인근의 절골을 합해 외감리라 했다.


 


 연화리로부터 감주골을 경계하는 목이 좁다란 송골을 지나면 골깊은 감주골이 시작되는데 “좁다”의 이 지역 사투리인 “솔다”는 뜻으로 좁은 골 즉 송골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송골을 지나치면 감주천 너머로 이 일대에서는 유명한 아흔 아홉다랑이 논이 이제는 버려진채 바라다 보인다.


 


 논 한마지기가 아흔아홉다랑이로 이루어질 만치 경작지가 협소하다는 것인데 우스개소리로 전하기를 모를 다 심고 나서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드니 삿갓아래에 한 다랭이가 더 남았더라는 것이다.












▲ 유명한 아흔아홉 다랭이논


 외감마을은 감주골짜기에서 가장 아래,바깥에 위치했다하여 아랫감주, 즉 외감(外甘)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안쪽의 절골은 마을뒤 대덕산자락에 옛날 큰 절이 있어 절골, 사곡(寺谷)이라 했다고 전한다.


 


 절골 안쪽으로는 내감리로 속하는 진터와 웃감주마을(내감)이 자리잡고 있는데 진터마을은 외감과 내감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하여 중감(中甘)이라고도 하며 군진(軍陣)이 위치했던 마을이라하여 진터로 불린다.


 


 특히 진터 앞산은 국영말달리기봉으로도 불리는데 임진왜란때 자신의 오판으로 군진을 지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자결한 송국영장군의 묘가 있어 장군봉으로도 불린다.












▲ 송국영장군의 한이 서린 장군봉


 감주골의 가장 윗마을인 내감마을을 지나면 내감에서 거창군 하성면 한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큰재가 나오는데 예로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임진왜란때 원군으로 참전한 이여송장군이 지맥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굽어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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