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戊子年) ‘쥐’의 해가 가고, 기축년(乙丑年) ‘소’의 새 해가 밝아오고 있다. ▲ 현 한국산업인력공단(한국폴리텍대학,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상임감사.
매 번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해 왔지만, 올해만큼 나에게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해는 없었던 것 같다. 2008년 1월27일, 제18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21년간의 기자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내 생애 처음으로 ‘사표’란 것을 써봤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과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나의 자신감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 3월 중순 발표된 한나라당 김천지역구 후보공천에서 탈락한 것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탈락의 고배는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나의 지나친 자만심이 나는 물론이고, 순순한 마음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나를 도와 주었던 많은 분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겨 주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3개월 뒤인 7월23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한국폴리텍대학,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상임감사로 근무하라는 명을 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에게 있어 무자년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특히, 무자년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내 가슴을 옥죄고, 부끄럽게 하는 것은 내 고향 김천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번 총선 때, 예비후보로 등록을 하면서 김천시민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 고향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당시 나는 비록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내 고향 선후배와 지역 원로들께 강조했었다. 이런 점에서 김천시민들께서 “송승호도 과거 선거에 출마해 당선이 됐거나, 떨어져 사라졌던 수 많은 ‘정치 불나방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타를 하셔도 할 말이 없다.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2008년 내 고향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사업들을 추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안타깝고 애석하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김천의 교육기관과 연계해 중앙의 예산(최소 50억원, 최대 100억원)을 배정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김천이 보유하고 있는 연계기능이 워낙 낙후되어 있어 이 사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물론, 이 사업은 내년에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미약하나마,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천출신 중견 건설업체들과 지역건설업체간 연계고리를 조성한 부분은 어느 정도의 성과였다고 애써 자평해 본다.
나의 이런 자평에도 불구하고, 몇 일전 실로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연락을 준 친구의 질타는 나를 더욱 더 부끄럽게 했다. 김천시청에 근무하고 있고 중학교 동기인 이 친구는 나의 오랜 지기(知己)다. 밤 11시14분, 친구는 나의 핸드폰 번호판을 눌렀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큰 목소리로 “그래 친구야 나다. 잘 지내고 있지?”라고 안부부터 물었다. 이 친구는 “그래, 잘 지내고 있다. 너도 잘 지내냐. 집사람도 잘 있고?”라며 인사말을 하고는 이내 따발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친분 있는 몇몇 분들과 소주 한 잔 하고 있는데, 정치인들 얘기가 나왔고, 곧바로 술자리가 정치인들에 대한 성토의 장으로 변했다. 자네도 참고로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전화를 했다. 지금 김천은 쑥대밭이 되고 있다. 지역경제는 완전 개판이고, 주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려 죽을 지경이지만, 뽀족한 방법이 없다. 음식점만 계속 늘어가지만, 장사가 될 리가 있겠냐, 주머니사정이 좋아야 외식을 하지........
그런데도 선거때만되면 김천의 발전을 혼자 다 책임지겠다는 투로 큰 소리를 치던 정치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당선이 된 사람은 된 사람으로서의 책임이 있고, 떨어진 사람도 김천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상,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니냐. 이 인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너만이라도 이런 ‘정치꾼’이 되지 말고, 진정한 ‘정치인’이 되길 바란다>
己丑年 내년에는 친구에게 이같은 질타를 듣지 않기 위해 ‘김천사랑’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내 고향 선후배 및 어른들께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