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으로 시집 온 것이 살아가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영미(32세·베트남)씨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김천신문
작년 셋째인 막내 아들의 어린이집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분가를 한 이씨는 10여년간 시부모와 함께 살아오면서 행복이란 단어에 대해 가장 잘 이해했다고 했다.
지금도 거의 매일 시부모를 찾고 시댁 가는 날까지 시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한국으로 오고 바로 담석증으로 입원을 했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이 정성껏 돌봐주시는 모습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저를 아껴주시는 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대화가 어느 정도 되면서부터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예쁘게 살고 있어요. 저에게 정말 친부모 이상으로 잘해주시는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신랑과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 전혀 한국어를 못해 대화가 되지 않고 낯선 한국문화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씨는 참을성 있게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시댁 식구들 덕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혼 2년 뒤 첫째를 출산했을 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요. 진짜 기뻐해주시며 ‘아가 고생했다’며 선물로 목걸이를 사주셨어요. 둘째 때도, 셋째를 출산한 후에는 시아버님이 새 자동차를 선물해 주셨어요. 물질적으로 잘해주신다고 해서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에요. 마음으로도 정말 잘해주셔서 저 역시 진심으로 마음까지 담아 정성껏 잘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주신 만큼 돌려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지만 언제나 ‘이쁘다. 잘한다’ 칭찬해 주셔요”
자신이 시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방법은 시부모의 소중한 아들인 남편의 아침을 하루도 빠짐없이 차리는 것이 전부라며 미소 짓는다. 한국말이 원활해지고부터는 가끔씩 신랑과 함께 갖는 새벽 티타임이 정말 좋다는 이씨. 친절하고 좋은 시부모와 남편 때문인지 “한국 사람은 다 멋있고 착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2007년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겼을 당시 센터를 찾았었다는 이씨는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이라 이용하고 싶어도 멀어서 할 수가 없었지만 작년부터 직지농협에서 찾아가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어 좀 더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베트남에 있을 때 초등생 정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 아이들 키워두고서 대학 공부를 시작해 볼까 해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향한 도전에 열정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남편이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하는 시댁식구들 모두 늘 제 곁에서 오래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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