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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수필산책- 그리운 남곡 친구들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7.11.07 16:09 수정 2017.11.07 04:09

정춘숙(수필가·부곡동)

ⓒ 김천신문
맑은 햇살이 가을 냄새를 베란다 가득 들여 놓는다. 가을이 선사한 단풍들도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요즘 가을을 타는 것처럼 쓸쓸할 때가 있다. 그런데 작년엔 이맘때가 너무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기억을 따라가 보니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다.

고향 친구들과 25년 만에 모임을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한동네에서 자라 허물이 없는 친구들, 열 명이어서 만나면 시끄럽고 재미있었다. 자전거로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한 줄로 같이 다녔다. 자전거가 고장이 난 친구가 있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친구는 같이 타고 한 친구는 가방을 싣고 다른 친구는 자전거를 수리점에 가져가는 걸 도왔다. 단결이 잘되어 선후배들의 질투를 산 적이 많았다. 

지난해 모이자고 카톡에서 말한 뒤 반나절 만에 회비를 다 넣은 것만 봐도 단결력이 입증되었다. 직지사 펜션에서 일박을 약속하고 전국 각지에서 다 모였다. 역에서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수다로 시작해서 수다로 끝을 맺었다. 어제 본 것처럼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정겨웠다. 옛날에 하던 닭싸움 놀이, 수건돌리기를 하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남들이 보면 하나도 우습지 않은 일까지 친구들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웃음이 많았다.

오래된 이야기보따리가 하나씩 풀어져 나올 때는 그 시절로 돌아가 소녀가 되었다. 가장 웃긴 이야기는 첫 생리를 시작한 친구가 방법을 몰라 팬티를 죄다 씻어 빨랫줄에 널고 죽을병 걸렸다고 친구들에게 오라고 한 것이다. 바쁜 농촌에서 일일이 다 가르쳐 주지 않아 친구들끼리 해결한 일들이 많았다.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알려준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던 그 사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리 또한 왜 그렇게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아마 우리 친구들은 모두 경찰서에 가야 하는 몸들이다. 5대 5로 나뉘어서 무슨 서리든 대결을 했던 것 같다. 타임머신이 있어 가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두말 않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한 남자의 여자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어 25년 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각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구들은 꼭 친정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고 좋아했다. 엄마 냄새나는 갱시기를 끓여 먹을 때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오래된 서러움이 고향냄새가 나는 친구들을 보자 폭발을 한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어쩜 서글프고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철부지 소녀들이 아기를 낳아서 엄마가 되어 한 가정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데에는 어린 시절의 활기찬 기운들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힘들 때는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힘이 나오는 걸 느낀다. 그 때 그 시절이 몸 속 어딘가에 약이 되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옛날이야기는 밤새 끝날 줄 몰랐고 울다가 웃다가 꼬박 밤을 지새웠다.
사십대 중반을 넘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나이를 잊게 하는 여행이었다. 추억 앨범에 넣을 이야기가 하나 더 추가 되었다. 일 년에 한번은 꼭 보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가을을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은 많이 쓸쓸해하고 추억을 많이 꺼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난 자연스럽게 가을에게 스며들어 가을이 다 가도록 그 속에서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 하늘이 너무 맑은 날은 슬퍼서 눈물도 흘릴 것이고 새침한 코스모스를 보며 질투도 할 것이다. 그래야 가을처럼 내면이 더 깊어지고 더 성숙되어 질 것 같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카톡 방에 또 올려야겠다.

남곡 친구들아, 우리 어서 날 잡아서 또 얼굴보자. 실컷 웃으면서 수다를 떨어보자.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는 가을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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