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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급하게 허둥대다 새끼발가락 하나를 다쳤다. 맨발로 좁은 문을 나가다가 툭 부딪친 건데 순간 너무 아팠다.
손님은 와있지, 커피라도 한잔 내야지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한참 뒤에 들여다보니 새끼발가락 하나가 벌겋게 부어올랐고 발등 주변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볼 것도 없이 골절이네요. 깁스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근데, 깁스하면 운전도 못하잖아요. 그냥 참아 볼게요”하고 약만 받아 나왔다.
속으로 ‘이까짓 것 뭐! 새끼발가락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일주일을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으니 발바닥이 아프고 발뒤꿈치로 걸어보니 발목이며 반대쪽 다리까지 아팠다.
잘 때도 통증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별것 아니라고 우습게 생각했던 새끼발가락 하나가 “그것 봐, 나는 소중해”라고 계속 외쳤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고 잘못하면 수술해야 하니 깁스를 안 하면 안 된다기에 로보캅 같은 깁스를 덜컥 신게 되었다.
이걸 어쩌나. ‘그래, 어쩌겠냐! 그동안 바삐 살았으니 천천히 걸어가라는 가르침일거야,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탔다. 짧은 거리였지만 운전석에서 바라본 그동안의 시야와 뒷 자석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저 멀리 하늘도 보이고 사람들도 더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았으며 전봇대에 붙은 광고들까지 보였다.
차에서 내려 한 발짝 걷고 쉬고 또 한 발짝 걷고 쉬다보니 담벼락에 핀 들꽃도 보이고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빛도 참 아름다웠다.
‘이만한 게 다행이지 뭐’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사는 건 아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빨리 처리 해 내야 할 일들이 생기고 직접 움직이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슬슬 화가 났다.
성큼성큼 걸어 갈 수도 없지, 목욕탕도 못가지, 아이 학교도 택시 태워 보내야지, 내가 매일 수영장에 태워주던 친정엄마도 차가 없으니 수영장도 못가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토요일이라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고 좀 누워 있으려 했는데 핸드폰이 자꾸 울린다.
“누나, 잘 지내세요?” 근 30년 만에 반가운 전화가 온 것이다.
“응, 경욱아! 오랜만이네. 그래 그래.”
“누나 얼굴 잠깐 보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이걸 어쩌나 화장도 안하고 다리는 이 모양인데……. 그리고는 집으로 찾아온 그 애를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
군대 가기 전에 보았던 얼굴이 맞긴 한데 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런데 경욱이는 별것 아니라고,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노라고 먼저 악수를 청한다. 저녁때는 되었고 밥 한 그릇은 먹여 보내야지 싶어 식당으로 이동했다.
의족을 한 경욱이와 깁스를 한 내가 똑같이 절뚝이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비오는 날 밤에 도로를 건너다가 차가 덮쳤다는 얘기와 중환자실에서 보름 만에 깨어났고 다리 하나를 절단하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를 담담하게 했다.
삼일동안 밤낮으로 정말 많이 울었고 그러고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는 그런 엄청난 얘기를 초연하게 한다.
그리고는 “누나! 저는 한 개를 잃고 두 개를 얻었어요” 라며 도를 통한 사람처럼 너털웃음까지 웃는다.
그동안 새끼발가락 하나 다쳤다고 엄살 부린 내가 머쓱해졌다.
쉽지 않았을 텐데……. 나보다 어린 그가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그 전보다 왕성하게 일도 하고 있다는 강인한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알렉상드로 졸리앙의 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에서는 “삶이 있는 그대로 이게 내 버려둔다. 판단하지 않고, 왜냐고 묻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 하고 자기가 처한 현실을 한탄한다고 해서 좋아 질 것은 하나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자, 그것이 현명하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박노해 시인의 글처럼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지난번에 “의사선생님 깁스를 왜 이렇게 오래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스무 살이면 빨리 낫는다”라고 했는데 벌써 내 나이도 뼈가 잘 붙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살다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긴다. 남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디 나만 그렇겠나.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울고만 하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새끼발가락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중요하고 매일매일도 너무 소중하다. 주어진 오늘에 그저 감사하고 기쁘게 살자.
어느덧 한해가 또 저문다. 365일 각자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자축의 박수를 보내자. 정말 수고 많았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
새해는 더 많이 더 높이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평범한 것에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더 늙지 않기, 더 아프지 말기, 더 지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