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전국 13도 의병을 한데 모아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하며 의병전쟁을 전개했던 『왕산 허위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이 21일 오전 대구 동구 효목동에 있는 망우공원 內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광장에서 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지부장 권준호) 주관으로 열린다.
기념행사가 열리기전인 이날 9시부터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 앞 광장에서 독립운동관련 사진전이 열리며, 왕산 허위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왕산 허위의 나라사랑과 의병전쟁"이라는 책자도 배부한다.
왕산 선생(허위)은 누구인가.
| |
|
ⓒ 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
1854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한 허위 선생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영희정 참봉, 평리원 재판장을 거쳐, 의정부 참판, 비서원승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통분해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에서 이인영, 신돌석, 이강년, 문태서, 민긍호 의병장과 함께 전국연합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을 조직하였고, 군사장 겸 진동창의대장(경기․황해도)으로 선발대 3백여명을 이끌고 일제 통감부를 공격하려는 서울진공작전을 펼쳤으나, 후속부대와의 연결 미비와 무기의 열세 등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허위 선생은 1908년 5월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었으며, 그해 10월 21일(음력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바 있으며, 출생지인 구미에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을 현재 건립중으로 2009년 5월경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한편, 서울시에는 수도 탈환을 진두지휘한 격전지인 청량리에서 동대문 간 가로명을『왕산로(旺山路)』로 제정, 선생의 업적을 기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