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삼현 선생의 후손이 토지 보상금 전액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 기부했다. 이재언씨는 고조할아버지(독립운동가 이삼현(李參鉉) 선생)의 소유였던 땅의 일부가 국가의 도로로 귀속되었음에도 토지 소유자였던 이삼현 선생의 주소지가 불명확했고, 토지 승계가 공사 이후 이루어졌다는 이유 등으로 공탁금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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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서는 이재언씨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조상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인정받음과 동시에 공탁금 역시 지급 받는 것이 타당하다” 고 의결, 공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공탁금을 지급받은 이재언씨는 해당 금액을 의미 있는 일에 쓰고자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에 “무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조사 및 학술 연구를 통해 그분들의 애국과 희생정신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보상금 전액을 기부금으로 전달해왔다.
정진영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 이삼현 선생의 의지가 그 후손 분께도 잘 이어져 내려온 것 같아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며, 이번에 주신 기부금을 소중히 활용하여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독립운동가분들을 발굴하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 밝히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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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삼현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1877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3월 17일 일어난 1차 예안면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선고 받았다. 이후 1920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파원 박기석(朴基錫)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의 활동을 도왔다. 1995년 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에 추서됐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야외에 마련된 추모벽 ‘경북사람들 광야에 서다’에서 이삼현 선생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