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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상 창작21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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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時調)는 측은지심으로 진부한 세계를 환골탈태시켜 새로운 역사를 떠올리는 간절하고도 장엄한 염불이다. 비유와 상징의 언어를 내포한 채, 소리와 색(色)으로 현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결합해서 오롯한 진선진미(盡善盡美)를 추구하는 문학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관계하면서 뜨겁고 귀한 생명의 떨리는 현상을 맞이한다. 이런 현상은 자연의 리듬을 형식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시조의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운율(韻律)은 서정시나 정형시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포우(Poe)는 시를 ‘미의 운율적 창조’라고 정의했고, 웰렉(Wellek)과 워렌(Warren)은 「문학의 원리」에서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는 운율과 은유’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밝힌 바 있다.
그중에서 율격(律格)은 시조의 핵심이고 생명이다. 형식적으로 외형률의 리듬에 의해 형성된 시조는 크게 음절수에 의한 음수율과 그 음절의 폭에 의한 음보율, 나아가 그러한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적으로 문장을 확장해 헤아리는 의미율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매개로 형성된 시는 다채로운 상상력에 의해 무한한 역동성을 갖는다. 개별화되고 단조로운 언어의 몸을 미학적으로 변화시켜 창조적 개성으로 우리의 삶을 형상화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시적 리듬의 운용은 언어를 되풀이하거나 글자의 수를 일정하게 짜 맞춰 반복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발생했지만, 현대의 리듬은 표면의 풍경에서 보다 다채롭고 다이나믹한 심상(心象)을 적극적으로 아울렀을 때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
시조의 율격은 가장 중요한 형식적 요소이고, 다른 문학 장르들과 특징적으로 구별 짓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현대의 시조는 그 형식을 의미 있게 극복해 내적인 율격을 적극 수용하고 실천해야 할 과업을 안고 있다.
운율을 바탕으로 쓰인 시(詩)는 사실의 인식에 정서적 반응이 수반된다. 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시조를 즐기고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 반응은 음보와 음보, 구와 구, 장과 장, 수와 수에서 발생되는 소리, 또 그 소리 사이에 놓인 휴지 공간, 구두점의 종류와 유무 등에 의해서 시조의 핵심적 요소인 리듬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그동안 시조는 음수율(音數律)과 음보율(音步律)이 중요한 율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음수율은 그 음절 배열의 규칙이 엄격하지 않고 느슨해서 언제나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음수율보다 음보율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음위율을 포함한 외형률은 객관적 운율로서 운율이 시의 표면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며, 가시적 물리적으로 그 율격을 따질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시의 내면에 존재하는 내재율은 자유시의 특성으로, 이러한 리듬은 시인이 형상화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 다양하게 생성된다. 내재율은 시 속에 흐르는 시인 특유의 맥박과 호흡이며, 이것은 다분히 주관적 정서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므로 이 개성적인 운율의 구체적 실현은 시 감상자의 느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내재율이란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이것을 시조의 형식과 접목시키면 시조가 보다 탄력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시의 모습으로 더 한층 깊이와 폭을 확보하면서 형식적 기율로 인해 관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시조의 상투성과 단순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적극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현대시조는 고유한 형식과 함께 내용을 보다 다채롭게 운용해야 한다. 형식이 구속이 아니라 절제의 미덕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일정한 정형의 규칙 속에서도 자유로운 보편성을 획득해 더욱 손색없는 현대의 시로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시인은 음악적 효과와 이미지를 위해 언어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음악가이자 화가이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끝없이 탐색하고 추구하는 탐험가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창조적으로 형상화하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시는 자연이 품고 있는 다채롭고 자연스런 시적 리듬을 흡수했을 때 누구나 쉽게 감동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
필자 이교상(李敎相)
경북 김천 출신이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석사).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에는 ‘긴 이별 짧은 편지’, ‘시크릿 다이어리’와 단시조집 ‘역설의 미학’이 대표적이다. 현재 계간지 “창작21” 편집위원이며, “이교상학당 시조아카데미”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