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으로 살다간 도연명(陶淵明)의 을유세구월구일(乙酉歲九月九日)의 “미미추이석(靡靡秋已夕) 처처풍로교(凄凄風露交) 만초불복영(蔓草不復榮) 원목공자조(園木空自凋) 하이칭아정(何以稱我情) 탁주차자도(濁酒且自陶)” 싯구가 훅 가슴에 와 닿는 만추지절, 11월의 가을은 메마른 소리가 주조(主調)다.
“어느덧 가을도 저물어, 바람과 이슬이 모두 싸늘하네. 덩굴진 풀도 생기를 잃고, 뜰의 나무도 쓸쓸히 시드네. 무어라 내 감정을 이름 지으랴 탁주에나 도연히 취해야지”
원불교 대종경 교의품37에 “동남풍은 만물을 살리는 도덕의 바람이고, 서북풍은 만물을 움츠려들게 하는 법률의 바람이다.”라는 소태산 박중빈 말이 있다. 차가운 하늬바람에 식생들이 메말라가며 ‘서걱서걱’ 바람이 숲을 훑으며 지나가는 소리에는 삶이 벅찬 서민들의 한탄이 묻어 있다. 민생경제는 총체적 난국인데, 정치는 실종되어 버렸다. 사정정국이 올 가을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수선스러움과 뻗침의 계절’ 여름보다는 ‘숙성과 메마름의 정서를 일깨우는 계절’ 가을이 우리 중년의 정서에 더 부합한다. 아마도 지나온 어제에 대한 그리움들이 내면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인(古人)은 “寒來署往(한래서왕)”이라 했는데, 가을은 더위가 물러서고 추위가 오는 걸까, 추위가 닥쳐 더위가 비켜서는 것일까?
어쨌든, 씨앗이 열매로 알차게 익는 숙성의 계절에 생명의 한 자락이 흘러 지나간다. 조마 죽정마을 앞쪽 너른 들판, 추수가 한참이다. 저물어가는 해가 비춘 볕에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볍씨에 붙은 솜털이 반짝인다. 논바닥 볏짚 더미에서 풍겨져 나오는 풋풋한 냄새가 낱알에 담긴 농부의 고단함을 위로하듯 또 다른 신선함으로 가을 길손의 후각에 스며든다.
이내 곧 나무들도 채색된 잎들을 떨어뜨리고 메마른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숱한 날들을 함께 해오며 옆을 지켜주던 그들을 잊긴 힘들 것이다. 이렇게 가을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이 영글고 우리 인생의 나이테도 더해간다.
또한 늦가을은 ‘해(日)를 따라 생활하는 벗’에게는 쓸쓸한 계절이다. 해뜰 때 일어나 온종일 일터에서 바삐 움직이다보면, 하루가 다 가버린 해질 무렵에 비로소 피로감과 쓸쓸함을 느낀다. 등짝과 흰머리에 만추 빛이 내려앉은 모습이 참 보기 좋았던 것은 가을도 작별을 고하고 있음을 알았던 걸까? 가을이 깊어질수록 해는 빨리 저물고 벗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겠지.
장삼이사(張三李四)와 달리, 벗은 밤의 어둠과 새벽의 어둠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내 밝아질 것을 알고 있는 마음과 오래 어두울 것을 알아버린 마음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해를 따라 생활’하면서 익히 겪어왔기 때문이리라.
“지켜야할 삶”이 해의 시간에 익숙해진 벗에게 늦가을 밤은 낯설고 고단하다. 세월의 나이테가 굵어진 그에게 저녁은 쉽게 오고 빠르게 저물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마음은 ‘저무는 마음’이 된다.
노정리 마을회관 어귀, 고목이 미련 없이 떨쳐버린 낙엽 무더기가 있다, 보기와 달리 성질머리 급한 고목은 제 몸을 덮고 한해를 버텨준 잎들을 많이도 털어버렸다. 감탄고토(甘呑苦吐)! 세상사도 그러하겠지. 고된 삶을 참으며 젊음도, 검은 머리도 삼키고 세월은 잔주름만 남긴 채 또 다시 떠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