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던 날, 부산에 거주하는 김천 출신 송연희 작가의 “너를 기다리다 해가 진다”라는 다섯 번째 수필집을 접하게 되었다. 작가는 2023년 6월의 어느 날, 이번 수필집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프롤로그에서 담담히 풀어냈다.
“참, 고맙소. 서른서너 해 동안 너와 사랑에 빠졌다. 너는 싫증날 겨를 없이 날마다 새로운 정인이다. 내 속 다 드러내도 잠잠히 참아주고 외로운 날, 아픈 날을 위로한 너. 네가 없는 내 삶은 얼마나 건조했을까. 오랜 시간 함께라서 참 좋았다. 수필아, 고맙다.”
작가는 6.25 전쟁에 참전해 금화지구 전투에서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남편의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그리움과 원망을 품고 한평생을 지내다가 칠십여 년 만에 낯설 수도 있는 남편의 품에 안긴 어머니이자 한 여인의 삶을 수필이란 형식으로 보듬고 있었다.
우리가 추억을 만들고 반추하며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기에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일상의 순간 속에서 느끼는 기분이자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의 초입에 작가의 수필을 읽으면서 문득 햇살 좋은 가을날, 빛고운 단풍잎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가을을 닮았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작은 오해에 친구도 멀어지고 그마저 빛바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인생의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가을이 거침없이 깊어지면 어찌하나. “듬성듬성 하늘이 떨어져 내린 낯선 거리의 오후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추억을 뽑아내니 나는 잡을 수 없는 풍선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가을 서정/신진호>
작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어머니와의 이별을 토로했다. “당신을 떠나보냅니다. 당신은 내 문장의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바람으로, 구름으로, 푸른 달빛 같은 그리움으로 당신은 언제나 나의 서사였습니다. 그런 당신을 떠나보냅니다. 나는 이제 쫀쫀한 문장을 엮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내 문장에서 당신이 떠난 까닭입니다. 주어를 잃은 행간이 헐겁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직 당신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울 당신, 이젠 안녕!”
송연희 작가는 김천에서 출생했다. 1990년 <문학예술> 신인상과 1995년 <수필공원> 추천 완료했다. 수필집으로 ‘실뫼골에 잠긴 바람’, ‘봄물을 탐내다’, ‘뿔’, ‘따뜻한 그늘’, 현대수필가 100인선집 ‘세상과 세상사이’가 있다.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 제11회 국제문화예술상, 제7회 부산수필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 부산문인협회수필분과위원장, 에세이부산동인, 부산수필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