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종합

애향 회고록 - 금릉중·고등학교 악대부를 창설하다<중>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8.16 13:46 수정 2024.08.16 13:46

강희일(전 김천대덕중 교장)

다음날 전교생에게 장도리와 뺀지를 가지고 등교하란 지침이 내려졌다. 전교생은 며칠이 걸려 그 널빤지의 못을 죄다 빼내었다. 그 널빤지는 간추려져서 인근의 김천소년교도소로 보내졌다. 그 널빤지는 소년 교도소에서 책걸상으로 변했고 그 책걸상을 판매한 돈은 학교 악기 구입 자금이 되었다. 김정상 교장선생님께서 악기를 구입, 악대를 조직하고자 미군 부대에 가서 도움을 요청, 부대장의 협조를 받아 왔던 것이다.

나는 악대 조직에 대해 대학 동창인 대구 대륜고교 박삼열 선생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악기 납품은 입찰을 통해 김석준 사장이 납품하게 되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나는 악대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씩씩하게 생긴 학생은 트럼본, 입술이 얇고 가슴팍이 튼튼한 학생은 트럼펫, 체구가 굵고 큰 학생은 큰북, 저학년생이지만 장래 악장 후보감으로는 심벌즈 대원 등등으로. 악장감은 외모도 잘 생겨야 하지만 음악 감각이 민첩한 학생 …. 이런 식으로 16인조 악단 대원을 모두 갖추었다.

악대 대원 선발을 마친 다음 날부터 각 악기의 음계 연습을 시켰다. 아직 악기가 없으니 음계를 칠판에 적어놓고 손가락으로 연습을 한다. 피스톤 악기가 대부분이니 투투투투로 도레미파 솔라시도를 익혔다. 트럼본, 글라리넷, 색소폰은 물론 대북, 소북 치는 법도 자세히 지도 했다. 한편으론 편곡이 급했다. 우선 애국가, 교가, 응원가, 행진곡 등을 우리 악대 인원에 맞게 편곡해 대원들에게 악보를 배부해 가며 연습을 시켰다.

금릉중·고 악대부 1965년 때의 활동모습

악기도 없이 입술과 손가락으로 연습을 한다. 입술로는 딴딴딴 딴딴딴 딴-딴, 손가락은 0, 1 2, 0 0 1 0 1, 1, 2 0 0, 1으로 피스톤 누르는 흉내를 내면서 하는 것이다. 매일 방과 후 음악실에서 계속하였다. “선생님, 악기는 언제쯤 옵니까?” “며칠 후 곧 들어올 터이니, 맨손가락 연습이나 철저히 하면 된다” 하면서. 하지만 악기 없이 학생들에게 연습을 시키기에는 미안한 마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어느 날 악기 16개가 도착했다. “야, 악기 도착했다!” “나팔이 왔다.” 그때 악대부 학생들이 내지르던 환호성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악대부원 전원을 집합시켜 놓고 하나 하나 악기를 배부하니 학생들은 신기한듯 만져보며 더욱 연습을 맹렬히 한다. 막상 악기를 가지고 대하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나왔다. 내가 직접 각 악기마다 입을 대고 불면서 지도해야 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일 두세 시간씩 마우스 피스에 입을 대고 직접 불면서 연주 지도를 하는 것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부딪쳐 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새 악기를 가지고 이렇게 연습하는 광경을 교장선생님께서 자주 돌아보셨다. 교장선생님께서 하루는 나를 교장실로 부르시더니 흰 봉투 하나를 건네 주시는 것 아닌가. “강 선생님, 정말 수고하십니다. 계속 그렇게 직접 나팔을 불면서 지도하시기에 얼마나 힘 드십니까? 이거 얼마 되지 않지만 몸 보신을 하시고 또 열심히 지도하십시오.”라 하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신바람이 났다.

김정상 교장선생님은 금릉중·고교에 오래 계셨다. 나중에 대구시교육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퇴임하셨다. 이젠 고인이 되셨지만 아, 학구적이며 인정 많고 유머러스한, 참 훌륭한 교육자이셨던 김 교장선생님이 그립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