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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수필

수필공원 - 산 조상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10.31 13:34 수정 2024.10.31 01:34

최원배(중앙고1회 졸업생 개령거주)


내 외손녀가 올해 처음으로 여학생을 모집하는 중앙고등학교에 입학 했다. 중앙고등학교는 1964년도에 “금릉고등학교(金陵高等學校)”라는 교명으로 개교하여 1978년도에 현재의 교명으로 바뀌었다.

벌써 6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가 되었는데 사람의 나이로 치면 환갑을 맞은 것이다. 지금은 혁신도시에 새로 지은 멋진 건물과 잘 갖추어진 교육환경 속에서 전체 20학급 440명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개교 당시에는 변변한 교실조차 없어, 지금은 김천여자중학교로 바뀐 그 당시 금릉중학교였던 건물 서쪽 귀퉁이에 있는 기와지붕의 낡은 독채 건물을 교실로 만들어 한 반 60명 정도의 학생으로 첫 출발 하였다.

개교 당시의 교장은 김정상 선생님이셨는데 새 인문계 공립고등학교 설립과 좋은 학생 모집을 위해서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신 분이다.
그 당시 금릉중학교 동편에 있는 “김천잠사회사” 사장과 협의하여, 대단히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서울대학교 잠사학과에라도 합격”하는 학생에게는 대학 입학 등록금과 4년간의 학비를 후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얻어내는 등 여러 가지의 입학장려책을 마련하시고 직접 여러 중학교에 홍보하셨다.

그 당시 잠사 산업은 국가와 농촌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 산업으로서 서울대학교에 잠사학과가 있었을 정도였다. 교장 선생님은 잠사학과가 좀 낮은 점수대의 비인기 학과여서 열심히 공부하면 도전해 볼 만한 학과로 여겨 합격하는 졸업생이 있으면 그 결과 “서울대학교” 합격생을 배출시킨 학교라는 역사를 세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개교 이후 2회까지는 1반이었지만 3회부터는 2반으로 학교의 규모가 커져 더 많은 교실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교장 선생님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는 교실을 지을 수가 없어 미군이 폐기하는 목재를 무상으로 얻어서 건축용 자재로 쓰기 위해 왜관에 있는 미군 부대로 직접 찾아가셔서 지원을 요청하셨다. 그때 미군 병사가 교장 선생님을 “Hello!"라고 정중하게 부르지 않고 “Hey!"라고 해서 기분이 많이 상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의 그런 노력으로 미군의 지원을 받아서 지금 시청으로 가는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3칸의 교실을 새로 짓게 되었다.

나는 1964년도에 입학하여 1966년도에 졸업한 금릉고등학교, 지금의 중앙고등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서 내가 겪었던 좀 특별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김정상 교장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학과목의 여러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지만, 특히 어떤 수업 시간에 “너희들은 이 학교의 산 조상이다.”라고 말씀하신 사회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학년 2학기가 되어서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하였는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넉넉한 가정의 다른 학생들처럼 마음 편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비와 생활비 부담 없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고 찾다가 내가 원하는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고 내 이상에도 맞는 공군사관학교를 택하게 됐는데,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 무렵 박정희 대통령의 연좌제 철폐 발표 때문이었다. 그래서 희망과 용기를 얻어 합격을 목표로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부터 시험 요강에 맞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3학년 2학기가 되어 특차인 공군사관학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9월이라고 생각되는데 제19기 생도 모집 시험에 원서를 냈다. 그래서 10월 초에 대구 신천 변두리에 있는 어떤 남자고등학교에서 신체검사와 학과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공군사관학교는 학과 시험을 치기 전에 몸무게, 키, 큰 상처 유무, 치질, 색맹 등 까다로운 신체검사부터 먼저 하고 만약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면 학과 시험을 칠 수 없었다.

신체검사를 받는 동안 하늘에서는 국군의 날 행사의 하나로 굉장한 비행 폭음을 내면서 멋진 에어쇼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신체검사에 합격하여 군인처럼 큰 소리로 “경북지구 32××번 합격!”하면서 판정관에게 거수경례로 신고하고 나서 학과 시험을 쳤다. 그렇게 1차 신체검사와 학과 시험을 치르고 난 뒤 계속 학교에 다니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합격 여부 통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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