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아들 영호 왔습니다. 오늘은 김가네 김장하는 날입니다.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우애 있게 지내라는 말씀 잘 새기고 있습니다. 저하고 같이 교대부초에 근무했던 선생님 네 분도 세 번째 동참하고 있습니다. 김장 잘 마치고 많은 사람들과 나누겠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절인 배추를 씻기 전에 고향집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김가네 맛꼬방의 산실인 밭 중간에 합장(合葬)으로 계신 부모님께 김장 보고를 했다.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는 김가네의 부지런함과 자연의 협조가 필요충분조건이다. 지난해 배추와 무를 수확한 후에 마늘씨를 넣었다. 올해 2월에 김천농업기술센터의 토양 검증을 받아서 아포농협에서 생산한 ‘온들에 퇴비’를 적당하게 넣었다. 4월에 고추모종 200여 포기를 심었다. 8월 17일에 배추씨와 무씨를 넣었다. 씨앗은 늘 그랬듯이 가장 비싸고 맛있는 종자로 골랐다. 김가네 맛꼬방의 밭에는 배추와 무가 뿌리를 깊게 박고 온 힘을 다해서 수분을 흡수하고, 온 잎을 다 벌려서 햇볕(햇빛)과 바람을 받으면서 제 힘으로 자라는 환경이다. 그렇다고 김가네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가끔씩 이런 교육을 생각한다.
무배추는 씨앗을 뿌리고 석 달 정도가 지나면 제 맛을 낸다고 한다. 11월 17일에 500여 개의 무를 수확했다. 큰 것은 3.21킬로그램이 되는 것도 있었다. 전체 생산량의 절반 정도는 김가네 오남매가 나누고 나머지 250여 개를 50여 가구와 나누었다. 무를 수확하고 일주일 뒤에 배추 400여 포기를 수확했다. 작년보다 알이 꽉 차고 훨씬 무거웠는데 큰 것은 8킬로그램이 넘는 것도 있었다. 배추도 150여 포기를 30여 가구와 나누었다. 무와 배추를 수확하는 데는 10여 년 전부터 해봉 송애환 회장님의 차량 지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1월 29일 금요일에 배추를 다듬었다. 배추가 너무나 커서 절반으로 자르는 것을 누님에게 맡기지 않고 큰 무쇠칼로 직접 잘랐다. 11월 30일 토요일에는 평균 4킬로그램 이상인 배추 170포기를 절였다. 배추 작업이 끝나고 미리 씻어둔 무를 길쭉하고 얇게 잘랐다. 동생만 빼고 모두 환갑이 지나서 치아 상태도 고려했다. 동생의 땀과 노력의 결과인 100퍼센트 천연 고추는 10월 25일에 단골집인 창성방앗간에서 60여 근을 갈아두었다. 큰 양동이 두 곳에 찹쌀풀(죽)을 채우고 고춧가루를 넣고 새우젓, 멸치액젓, 생강, 마늘, 소금 등이 들어갔다. 이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지도록 긴 주걱으로 잘 섞고 하룻밤을 재웠다.
2024년 12월 1일 일요일은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 공개의 날이다. 7시 전에 고향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김장보고를 하고 절인 배추를 씻었다. 고무장갑과 장화를 착용하고 세 번을 씻었다. 아내는 점심 준비를 하고 오남매가 달라붙었다. 누님들 세 분이 한 곳씩 맡고 마지막 통을 영호가 맡았다. 소금에 절인 배추는 처음 물통에 넣을 때 반으로 자르면 배추 한 포기가 4등분이 되었다. 영호가 씻은 배추를 동생에게 던지면 동생은 차곡차곡 쌓았다. 호스에서는 물이 계속 흘렀다. 절이고 씻는 물이 김치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향에도 수도가 들어와 있지만 예전부터 사용하던 우물물만 사용한다.
절인 배추를 다 씻고 잠시 쉬는 시간에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선생님 네 분이 오셨다. 잠시 어묵탕과 커피로 아침 겸 새참을 먹었다. 과일 컨테이너 박스 12개와 나무받침판 2개로 김장판을 만들고 그 위에 비닐을 덮고 2인 1조로 김장을 시작했다. 동생은 절인 배추를 나르고 누님 세 분과 교대부초 네 분 선생님은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발랐다.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다. 영호는 김치통이 채워질 때마다 노끈으로 묶었다. 김치통이 바쁘게 채워지면서 이내 오남매의 30여 개의 김치통이 동이 났다. 돼지고기와 굴과 김장이 어우러진 짧은 새참을 먹고 미리 준비한 비닐 김장봉투에 담았다. 배추가 큰 것은 세 쪽을 적은 것은 네 쪽이나 다섯 쪽을 담았다. 준비한 100개 중에 60여 개의 비닐에 담았다.
12시가 되기 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김장판 위를 정리하고 서서 점심을 먹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삼겹살에 김장김치가 제격이다. 특별한 격식 차리지 않고 편하게 김장을 하던 곳에서 서서 먹는 김장날의 점심이다.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정겨운 시골마당의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의 풍경이다.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선생님들은 개인별로 10리터짜리 한 통과 5킬로그램 내외인 비닐묶음 두 개씩과 무김치를 마을회관에 주차한 차에 싣고 화양연화 농장에 도착했다. 한 분마다 무 두 개, 배추 한 포기, 샤인건포도 한 통, 대파 한 포대, 대봉감 여섯 개씩을 추가했다. 아침부터 뜨끈하게 해 놓은 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모처럼 고향집을 방문한 아들과 딸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선생님들과 헤어졌다.
김가네 김치는 오래 전부터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김치가 일정한 수준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배추, 무, 소금, 새우젓, 고추, 생강, 마늘, 물, 바람, 공기, 햇볕(헷빛), 땅 등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김가네의 지극정성이다. 김가네 김장맛은 동생의 수고가 거의 80 퍼센트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즉, 미쳐야 미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미쳐야(狂)는 집중, 정열, 열정, 끈기, 사랑, 노력 등등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가네 김장은 불광불급의 산물이다.
이렇게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는 수십 번의 만남과 수십만 번의 손길이 오간다. 누군가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이제 큰 누님은 일흔이 넘었고 둘째와 셋째 누님도 일흔에 가깝다. 영호도 환갑이 훌쩍 지났고 동생만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다.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가네 김장 프로젝트는 불광불급의 나눔이자 우애와 만남의 장이다. 이 모든 것이 김가넷 맛꼬방의 무배추와 고추와 마늘이 자라는 풍경과 한겨울의 강추위에 말을 달리는 밤바람소리와 어쩌다 내리는 눈까지 말없이 지켜보시는 부모님의 음덕(蔭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