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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어제 봄소풍을 다녀온 것을 일기로 쓴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김수원이 일기를 잘 썼어요. 대부분 사실만 기록을 했는데 김수원은 사실과 함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도 썼어요.” 1973년 대신국민학교 6학년 1반 교실에서 일기 검사를 마친 김명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 전날 대신국민학교의 학구인 남면의 초곡 마을의 광산 부근으로 소풍을 갔었다. 영호는 일기를 썼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혼이 나지 않은 것을 보면 설렁설렁 흉내만 낸 일기를 쓴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었고 소풍을 앞둔 날이라 그런지 3시 30분에 일어났다. 밥은 간밤에 미리 예약을 하고 김치 볶음, 쪽파 무침, 잘게 썬 단무지, 잘게 부순 미역도 함께 준비를 했었다. 지난해에는 김밥에 미나리를 넣었는데 올해는 감가네 맛꼬방에서 겨울을 난 쪽파를 넣기로 했다. 김밥용 김 30장을 4등분 했다. 4인분 밥을 큰 그릇에 퍼서 식힌 뒤에 김치, 쪽파, 미역, 단무지 순으로 넣고 비볐다. 도마에 김을 세 장씩 펴놓고 왼손으로 비빈 밥을 김에 놓았다. 왼손으로 골고루 펴고 두 손으로 김을 말았다. 두 번에 먹기에 적당한 꼬마김밥이 되었다. 할수록 김밥을 싸는 요령이 생기고 속도도 빨라졌다.
김밥을 싸는 동안 다시 밥솥에 4인분 밥을 했다. 4인분 밥을 김밥을 싸고 연이어 두 번째 4인분 밥도 김밥을 쌌다. 총 120개의 꼬마김밥이다. 김밥을 싸는 동안 몇 개를 집어먹었는데 짜지도 달지도 않았다. 무슨 특별한 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건강만 맛이다. 120개의 꼬마김밥을 마무리하고 나니 6시 30분이다. 안마기에 누웠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잠든 사이에 6학년 때 초곡의 광산으로 봄소풍을 간 기억이 났다. 단잠을 잔 아내가 일어날 무렵에는 봄소풍 준비를 다 마쳤다. 2025년 4월 6일 일요일은 김가네 오남매와 아내가 함께하는 봄소풍날이다.
혼자 7시 40분에 집을 나서서 구미의 둘째 누나를 태웠다. 오늘은 셋째 누나도 함께 했다. 누나들 얼굴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다시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김밥과 준비한 물건을 챙겼다. 그리 멀지 않은 제석리 남촌 마을에서 첫째 누나를 태웠다. 제석리 마을 입구 양쪽의 200여 미터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누나들과 아내의 이야기에는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화양연화 농장에 도착하니 동생은 빗자루를 들고 주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차에 실은 짐을 다시 정리하고 돗자리와 캠핑용 의자 두 개를 실었다. 취향대로 따뜻한 물이나 커피를 마시고 오봉저수지로 출발했다.
오봉저수지는 김천시 남면에 있는데 1989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처음에는 인근의 논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목적이었다. 지금은 농업용수 공급뿐만 아니라 수상 스포츠나 벚꽃길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저수지 중간 지점에 갈손 마을로 가는 다리가 놓여 있다. 저수지 둘레의 절반 이상이 데크길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물 위에 두 개의 정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상류 쪽에는 몇 개의 정자와 주차장, 화장실 등이 잘 구비되어 있다. 1년 전인 2024년 4월 7일 일요일에는 김천의 봉산면과 조마면의 벚꽃길을 둘러보고 오봉저수지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봄소풍이 가까워지자 누나들이 먼 길 갈 필요 없이 오봉저수지만 가자고 했다.
오봉저수지 길을 따라 벚꽃이 만발했다. 저수지의 물이 빠진 것을 보고 평생 농사꾼의 아내로 어쩌면 농사꾼보다 더 많은 일을 했을 첫째 누나는 저 물로 올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느냐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해 앉았던 평상에 돗자리를 펴고 물건을 정리했다. 누나들과 아내는 저수지 주변에 설치한 데크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동생과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1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친 뒤에 간식을 먹었다. 통닭이며 찹쌀떡과 과자 등이다. 동생은 소주와 맥주로 소풍을 즐긴다. 영호는 운전 담당이라 동생이 사 온 커피로 소풍맛을 냈다.
캠핑용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봄바람이 셌다. 간식을 먹는 중에 처형 두 분이 통닭을 준비해 오셨다. 며칠 전에 구미에서 ‘꽃과 같은 마음’이라는 꽃집을 하는 둘째 누나의 집에 둘째 처형이 봄단장을 위한 꽃을 사러 갔다고 한다. 둘째 누나가 오봉저수지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간다는 자랑을 많이 했단다. 그 자리에서 처형이 우리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하니 누나가 흔쾌히 좋다고 했단다. 그날 저녁에 처형과 아내가 통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영숙아, 벚꽃 구경 간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부러웠단다. 그래도 우리도 같이 가자고 부탁을 했지.” 둘째 처형은 아내가 1980년대 후반에 선산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몇 달을 처형집에서 숙식을 제공해 준 참 고마운 분이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이 바람이 너무 세고 약간 그늘져서 저수지 상류의 주차장 부근의 정자로 옮겼다. 가져온 모든 음식을 펴고 점심을 먹었다. 영호가 만든 120개의 꼬마김밥, 통닭, 찹쌀떡, 사과, 오렌지, 대추토마토, 과자, 소주, 맥주, 커피, 따뜻한 물, 삶은 계란 등등 푸짐하다. 점심이 한참일 무렵에 처형 한 분이 더 오셨다. 처가는 1남 6녀인데,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 처형이 오셨다. 우리집의 고추밭 놓은 날 등 누나들하고도 자주 만나서 이야기꽃이 활짝 핀 벚꽃 이상으로 화기애애했다.
느긋하고 푸짐한 점심을 먹고 누나 세 분, 아내, 처형 세 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동생은 한적한 평상에서 오수를 즐긴다. 침낭을 덮어주고 오봉저수지의 상류에서 혁신도시 방향으로 난 오수마을 가는 길을 걸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자두꽃은 만발한 지 며칠이 지났고 복숭아꽃은 막 피기 시작했다. 밭마다 조류와 두더지 등의 퇴치를 위한 바람개비 소리가 봄바람이 얼마나 센지 웅변하고 있었다. 화양연화 농장에 네 개를 설치한 것과 같은 바람개비이다. 마을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둘째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시 화양연화 농장으로 가자는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정자에서 철수해서 차 부근에 모든 짐을 가져다 놓았다. 아내는 처형들과 산책을 더 하고 온다고 했다. 여유 있는 10여 분을 달려서 화양연화 농장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누나들은 농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보일러를 찜질방 수준으로 준비해 두었었다. 조금 있으니 처형들과 아내가 도착했다. 잠시 밭을 둘러보고 누나들과 인사를 나누고 농장을 떠났다. “다음 해에도 같이 가요. 올 가을에도 가고요.”둘째 처형의 말에 누나들도 그러자고 한다. 동생에게 김밥과 남은 음식 몇 가지를 싸서 보내고 누나들과 아내는 농막에서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다음에도 이런 봄소풍을 가는 꿈을 꾼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영호는 야자매트 위에 캠핑용 의자를 놓고 바람개비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이 들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한 시간 이상이 지난 뒤에 누나들이 남은 음식을 4등분으로 나누었다. 명절이나 제사 또는 주말에 음식 등을 나누는 게 일상이 되어서 일사천리이다.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은 것은 나누어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오늘과 같은 김가네 소풍이 이어지길 소망한다. 바람이 몹시도 심한 김가네 소풍날이었다. 그 바람의 세기보다 더하고 끈끈한 김가네 소풍이 이어지길 소망한다.
혼자 하면 기억이 되고 둘이 하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여럿이 하면 역사가 된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가난한 소작농의 5남매였지만 늘 도란도란의 정이 있었다. 지금은 오남매 그 누구도 결코 가난하지 않다. 누나들과 동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아내는 장남이 수고가 많았다고 칭찬한다. 이런 오남매가 화목할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은 아내이다. 화양연화, 오늘도 참 좋은 김가네 소풍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