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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유튜브를 보고 가까운 곳에 미륵불을 모시는 암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구니스님 한 분이 특별한 인연으로 그동안 방치해왔던 미륵불을 세상에 드러내고 정성껏 모시고 기도드리는 도량으로 가꾸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 수십 년간 그곳을 수없이 지나쳐 다녔는데 까마득히 몰랐다니 궁금해지고 찾아가 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그 내용을 말했더니 마침 그곳 남면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다며 겸사겸사 같이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남면행정복지센터에서 볼일을 끝낸 후 부상고개로 올라가 유명한 어탕국수를 점심으로 사 먹고 월명리 미륵암으로 향했다. 도로변에서 아주 가깝다. 그런데 오래도록 가꾸지 않아 잡초만 무성히 자란 흔적, 덤불숲이 되어버린 묵정밭이 암자의 담장을 온통 가리고 있어 보통 그곳을 지나다녀도 그저 흔히 보는 산자락일 뿐 거기 암자가 숨어 있는 줄은 보통은 모르고 지나칠 만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묵정밭 사이로 좁은 길로 올라가니 거친 돌과 흙이 섞여 깔린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하고 계단을 오르면 담벼락으로 가려져 있던 작은 암자와 요사채 한 채가 그제야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두 마리의 개가 계단을 내려오며 심하게 짖어댄다. 아마 부부 개인 것 같다. 특히 남편 개가 목청 높여 짖어대고 아내 개는 주도권을 남편에게 맡기고 남편을 따라다니며 추임새만 한다. 남편 개는 특히 내게 심하게 짖어댔다. “왈왈왈~”난생 처음으로 개에게 이런 대접을 받으니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니 마당 왼쪽으로 미륵불이 서 계셨다. 개 부부는 따라다니면서 계속 짖고 거기다 새끼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남편 개는 파란색과 검정색이 들어간 자켓을 입었고 아내 개는 주황색과 검정색이 들어간 자켓, 강아지들은 초록색 쫄쫄이를 입고 몰려와 나를 향해 단체로 짖어댔다.
"미륵 부처님이 궁금해 잠깐만 뵙고 갈 테니 짖지 마라."
조용히 말을 하니 알아들었는지 코에 주름을 켜고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던 남편 개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강아지는 요사채 쪽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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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절 마당에 서 계신 미륵부처님께 3배 올리려고 합장하여 엎드렸는데 바닥에서 흙냄새가 푹 올라오고 이놈이 아직도 나를 경계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내가 엎드린 배석대 주변을 “사사삭” 빙빙 돌고 있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집요한 녀석이다. 집중이 안된다. 집중하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내 귀 가까이에서 녀석이 내뿜는 숨소리가 “쉑쉑쉑” 계속 들려오니 집중이 되지 않은 채 급히 의례적인 인사만 올리고 일어나 앉았다. 이 예의 없는 개를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똑바로 보고 엄한 표정을 갖춘 후 낮은 목소리로, "내가 나쁜 마음을 갖고 찾아온 것도 아니고 너를 해롭게 할 마음은 아예 없는데 너는 왜 내게 그렇 게 짖어대어 부처님 계시는 신성한 곳을 시끄럽게 하는가? 또 기도하려고 엎드린 내 주변을 계속 빙 글빙글 돌며 내는 숨소리에 집중 할 수 없었다. 너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내 기 도를 방해하며 고요해야 할 절 마당을 어지럽히는가?
돌이킬 수 없고 지난 일이 되었으니 그만 용서할 것이니 이제 나를 방해하지 마라."와~~근데 이 개 표정 보소. 순간 알아듣는 듯 눈의 독기가 사그라들고 미안한 눈빛이 되더니 민망했는지 고개를 법당 쪽으로 돌린다. 남편 개 옆에서 내내 조용히 따라 다니던 아내 개가 갑자기 코와 입을 찡그리며 “내 남편 왜 혼내느냐?"하는 듯 저음으로 “으르렁~~”
“너도 그러지 마라. 부처님 계시는 곳 지키려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남편이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짖어대지 않도록 바르게 알려줘야지. 내조를 제대로 해야 새끼들도 보고 배우는 거야. ”
법당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이 녀석들이 이번에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천천히 따라온다. 법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입구에서 아내 개가 또 “으르렁~~”법당문을 닫았다. 아내 개가 남편 개보다 속이 좁은가 보다. 개를 마음속에서 보내버린 후,법당에 모셔있는 부처님께 평상시의 기도를 올리고, “부처님, 저 밖의 개들과 혹시 제가 악연을 갖고 있었다면 풀고 싶습니다. 저 개들이 어떤 업으로 개로 사는지 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사는 동안 업을 다 녹여 다음 생에선 좋은 몸 받기를 바 랍니다.”진심으로 바랐고 반복하여 기도했다. 공양을 올리고 법당 밖으로 나오니 먼발치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순해져 있고 절 마당은 조용해졌다. 참 신기한 일이다.마당을 가로질러 걸어 나오며 그들을 향해 내가 먼저 손을 들어 "이제 우리는 간다. 잘 있어. 배웅나오지 말고. 안 나와도 돼."했더니 오려다 멈칫하더니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마당을 지나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랐다.그런데 실은 녀석들이 졸래졸래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만가만 들렸었다.
남편은, 장난기가 들었는지 “저놈들 어쩌는지 좀 지켜보다 갑시다. 재미있네.” 한다. 차 안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과연 살살 다가와 담벼락에 몸을 가리고 숨었다가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쳐다보다가 우리가 차 안에서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벽 쪽으로 얼굴마저 숨어버렸다. 잠시 후 또 궁금했는지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우리를 바라본다. 사람 말귀 다 알아듣고 밀당까지 하는 녀석, 남편 놈이다. 녀석의 이름을 임의로 붙여주었다. ‘빼꼼이’라고.
한참을 그러다가 우리는 천천히 차를 운전하여 도로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그 순간, 아까 우리가 처음 들어설 때 그랬던 것처럼 두 녀석이 갑자기 숨이 멎도록 “왈왈왈왈” 짖어대며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온다. 도로 쪽에서 낯선 차량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빼꼼아, 미륵암 잘 지키고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