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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왜, 아리랑인가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6.10.08 10:19 수정 2026.10.08 10:19

민경탁(시인· 가요사연구가)

ⓒ 김천신문
‘아리랑’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가 오래 전이다. 몇 해 전에 세계의 유수 작곡가들이 모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선정대회’에서 압도적으로 1위 곡으로 선정되었다. 선정위원에는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기념으로 유진박 전자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해 현장에서 연주되기도 한 것으로 알린다. 세계적 팝스타 방탄소년단(BTS)이 ‘아리랑’ 타이틀 음반을 가지고 지금 세계 30여 개 국을 다니면서 80여 회가 넘는 공연을 하고 있다. 미국 UC 버클리대에는 BTS 리드십에 관한 강좌가 운영되고, 뉴욕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BTS 강의를 하는 한국인 선생님이 있다.

아리랑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기원설이 스무 가지가 넘는다. 줄잡아 1,400여 년 전 북방으로부터 구비전승해 한반도에 전파, 우리나라에서 ‘아리랑’(아로롱)이란 언사와 후렴구가 나타나기는 1790년 이승훈의 만천유고에 실린 “농부사”에서부터다. 아리랑 기원설 가운데에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정기(李廷基 호 草谷. 국민대 영문과 재직. 1927∼2001) 설이 있다. 이 교수가 국외의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지식을 종합해 아리랑의 기원을 가장 멀리 잡은 학설이다. 이정기 교수는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영·불 문헌으로 알타이 고대어는 물론 동서양의 신화와 고고학, 인류학을 탐구해 한국 민족의 원형을 인류학적으로 찾기에 심취한 학자다. 미국 전기연구원(ABC)의 ‘세계 명사 500명’에 선정된 인물이다.

가장 오래된 , 현전 아리랑 영화포스터(최무룡, 엄앵란, 박암, 김지미 출연. 감독 최무룡, 1966)

이정기의 아리랑 기원설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본다. ‘아리랑’ 본체와 한국문화의 원형에 관해 논문과 학설을 여러 편 발표한 이 교수는 그 어원이 ‘ᄋᆞ리ᄅᆞ’에 있다고 주창한다. 이는 ᄋᆞ리(聖水, 天水, 國川의 뜻)+ᄅᆞ(물이 구르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ᄋᆞ리ᄅᆞ(聖水, 國川이 있는 곳)로 합성된 말이라는 것이다. 원래 우랄-알타이 지역에서의 한민족 원핵부족이 빙하기를 맞아 빙하를 녹일 태양이 떠오르는 산, 양명지(陽明地)를 향해가는 산고개를 가리킨다고 본다. 국어사적으로 보면 우랄-알타이>알티>ᄋᆞ리>ᄋᆞ리ᄅᆞ로 음운 변천하며 후대에 한국에 들어와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한민족의 원형 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있다(한국문화의 원형과 본체성, 이정기 장편서사시 『삼국유사 (1)』, 1988).

‘ᄋᆞ리ᄅᆞ’설은 아리랑의 기원을 퉁구스족 일파인 예·맥족 시대에 두는 ‘아라리’설보다 훨씬 앞당겨 후기 구석기시대로 보고 있다. ‘아라리’설은 청동기시대에 백두대간 강원·경상권 중심에 정착한 이들의 음악적 본질인 메나리조에 기원을 둔 학설. ‘ᄋᆞ리ᄅᆞ’설은 주로 서양 문헌에 의한 연구이며, 어원 형성 시기를 예·맥시대보다 훨씬 앞당겨 잡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영화설명 아리랑'을 무대에서 부른 성악가 유경이(1926)

구비문학 아리랑은 1920년대에 들어서야 기록문학으로 이행했다. 기록문학으로서의 아리랑 역사는 멀리 잡아도 1790년대를 넘어가지 않는다. 아는 이는 알다시피 경복궁중창기(1865∼1872)와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의 아리랑 채보(1896), 1920년대에 경성방송국 개국, 레코드산업 발달 그리고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탄생(1926)하면서 아리랑은 우리 사회 문화영역에 큰 영향을 주면서 독립적인 아리랑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민요 아리랑을 기록문학으로 대하여 최초로 연구한 이는 일본인 이치야마 모리오(조선민요의 연구, 1927)였다. 이 책에 그는 아리랑과 더불어 유산가, 제비가, 권주가 등등을 소개하면서 선구적인 조선민요 연구 업적을 남겼다. 조선에서 아리랑이 정체성과 자부심의 상징으로 불려지자 조선총독부에서는 아리랑 금창령(1929)을 내리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최영한(崔永翰. 조선민요론, 1932)이 조선민요를 ‘가장 조선 정조를 잘 표현한 문학작품, 조선문학의 정화, 조선 시가의 원류’로 보아 그 위상을 잡아놓았다. 조선총독부 촉탁 김지연(金志淵. 조선민요 연구 아리랑, 1935)은 전국의 아리랑을 수집, 각 도별로 대표 아리랑을 소개하며 최초로 아리랑 발생설과 사설을 더 하였다.

나운규 아리랑의 영화 타이틀(매일신보, 1926. 10. 3.)

현재 아리랑의 종류는 남·북한 합쳐 60여 종, 3,600여 수로 알린다. 평양에서의 아리랑 축제에서, 월드컵 축구대회 응원장에서, 또 민족 통합적 이데올로기 전면에서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른다. 아리랑이 생산성, 역사성, 역동성이 어우러진 한민족의 역사와 삶과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공시매체성을 띤 애국민족요, 케이 컬처의 표상으로서 더 글로벌 문화파워를 발휘할 것이다. 한국이 문화강국이 됨에 지속적, 세계적으로 역동성 있게 기여할 것이다.

김천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와서 고조되고 있다. 1930년대 초에, 대구 아리랑보다도 먼저 불려지던 김천아리랑이 근래에 가사만 발굴된 채 곡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고 있다. 재래 가사가 세 가지 있는데 최근에 또 어느 개인이 작사, 작곡하여 다른 버전을 내놨다. 민요는 개인에 의해 구연 되고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선 아니 된다. 지역사회에 인지되어 다수가 정체성 있게 부르고 전승하는 민중의 노래다. 김천아리랑 복원에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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