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최초의 현대 문단, “김천문예협회”(1930)
김천 최초의 현대시, ‘콩나물죽’(이산,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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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신문 |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1930년 전후는 일제가 한반도에서 더욱 심한 탄압을 가하고 신간회 해체와 카프(KAPF)에 대한 두 차례 검거로 애국적인 세력을 압박하던 시기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위에서 순수문학 운동이 문단의 주류를 이루어, 민족과 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문학의 예술적 기능을 더 중시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문단은 문학의 예술적 기능을 중시하면서 그 이면에서 더욱 심화된 예술적 형상화 방법으로 삶의 문제를 탐구하게 된다. 목적문학을 퇴조시키고 순수문학을 지향하면서 저항의식을 표현하게도 된다. 이에 문단에서의 세대 교체와 이념의 변화가 거세게 일어나게 된다.
이때의 청년 문사들은 기존 문학 매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발표 매체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들이 문단에 진입함과 문학 활동 영역을 확대해 가는 양상이 몇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한 가지가 경향 각지에서의 동인지 탄생이다. 전국 규모의 동인 작품을 흔하지 않게 내놓은 곳이 바로 대구·경북 지역이었다. 곧 대구의 『黎明』 『園藝』 『炬火』 『習作時代』 『農本』 『東聲』 『文園』 과 김천의 『無名彈』 , 영천의 『步』 『잣나무』 , 영덕의 『野烽』 , 상주의 『新尙州』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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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최초의 문예동인지 "무명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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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소도시 김천의 청년 문사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 신진 문사 38명을 동인으로 해서 엮어 낸 종합문예지 『無名彈』 (1930. 1. 1.)이 탄생했다. 당시부터 김천에는 지역 각급 학교에 근대문학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문인 교사들-백기만, 엄필진, 정열모 등-이 진출입하고, 지역의 언론-1920년대 초반부터 김천에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매일신문 지국이 있었으며 1923년부터 김천기자구락부를 만들었음. 1925년 서울 전조선기자대회에 경북·대구 언론인 20명이 참석했는데 김천에서 3명이 갔으며 1928년에는 경북기자대회를 김천서 열었는데 80여 명이 모인 대회였음-이 굳건히 있어 새로운 문학 변화의 중심에 서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무명탄”은 글자 그대로 ‘무명’(無名)이긴 하지만 ‘탄’환(彈丸)과 같은 힘과 폭발력을 지닌 문학을 펼치겠다는 취지의 단체이면서 동시에 그 동인지 이름이 되었다. 소지역 김천에서 발족한 문학 단체 이름으로서는 매우 도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명칭이다. 그만큼 각오가 남달랐을 것이다. 김천문예협회에서 1929년 8월부터 발간 계획을 널리 알리고 원고를 모집하다가(조선일보 1929. 8. 29.자), 동인지 편찬 과정에서 조선문예협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편집·재정은 조경환과 예종환이 책임졌다.
조경환은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의 맏형이다. 그는 매우 부유한 가정의 맏이로서 극작과 연극 활동을 하다가 1938년 가을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작사가, 음반 제작자로서 명성을 크게 얻은 문사다(대표곡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無名彈』의 편집인 겸 발행인은 진록성, 인쇄인은 이산(李山), 영업 및 편집소를 경북 김천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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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최초의 현대시 '콩나물죽'(이산 지음, 중외일보, 1930. 3. 29.)이 실린 무명항일시선집 " 빼앗긴 책"(단국대출판부, 1981. 9.)-경북대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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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문예지 『무명탄』의 집필진 38명 중에는 김천인 및 김천 거주인이 주축을 이루는데 가장 많은 글을 실으면서 발간에 크게 이바지한 이가 이산(李山)이다. 문인이며 언론인이었던 이산은 호가 凸堆, 필명을 LS 또는 李旭町으로 썼다. 주소가 김천 동부 욱정(旭町) 89번지로 돼있는데 여기는 『무명탄』의 편집 본부인 조선일보김천지국이 있던 곳, 이산이 사는 거리라 李山街로도 불렸다. 그는 『무명탄』에 산문시 「실연행진곡」과 소설 「추야장」, 「농촌정서애」 두 편을 실었는데, 시는 그 표현을 존중해 줄 만한 작품이 못 되고 소설 두 편은 김천 지역 빈농의 삶을 고스란히 빌려내어 당시의 우리 농촌 현실을 짐작하게 한다.
『무명탄』이 나온 직후 이산이 발표한 현대시「콩나물죽」(1930)이 있다. 『무명탄』에는 다른 김천 출신 청년 시인의 현대시가 보이나 습작기 수준의 작품들이다. 이산의 「콩나물죽」을 소개한다.
콩나물죽
김천 이욱정
콩나물죽
후룩후룩 먹으며
아버지 생각하엿다
우리 아버지 도라 오시면
죽 안 먹으려니 하고
-중외일보 1930. 3. 29
이욱정은 이산의 필명이다. 일제강점기 김천 빈농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서 항일시로 적발한 134편 중에 속해 있다. 일제는 1930년 1월부터 3월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에 실렸던 항일시로 간주되는 이런 작품들을 모아 일어로 번역해 공개했다. 당시의 언론탄압과 식민정치의 실상을 알게 한다.
이 자료를 모아 단국대출판부에서 1981년 9월에 일본어 번역본을 합쳐 단행본이 나오고, 2013년 2월에 도서출판 아라에서 또 단행본이 나왔다. 이산의 「콩나물죽」은 김천 최초의 현대시라 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