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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합

대항면편(61)

편집국 기자 입력 2006.06.22 00:00 수정 0000.00.00 00:00

  ▷향천리 지천(못내), 합천(광암)


  구(舊) 봉산검문소에서 복전동을 지나 직지사 굴다리를 지나면서부터 직지사 상가일대에 이르기까지가 향천리로 속하는 부락으로 지천, 합천, 묘내, 방하치등 4개부락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 부락은 조선시대에는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었는데 1906년에 김천군 대항면으로 편입된 후 김천땅이 되었고 1914년에 지천, 합천, 묘내, 방아치를 합하여 직지천변의 아름다운 마을이란뜻으로 향천동(香川洞)이라 고쳤고, 1971년에 4개부락을 각각 1,2,3,4리로 나누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사 상가로부터 향천2리인 합천과 이어져있는 향천1리 지천은 약250년 전에 해주정씨 한 선비가 직지사를 왕래하다가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이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마을 뒤 들문골짜기에 옛날 못이 있어 못내라 부르고 한자로 못지(池)자와 직지천의 천(川)자를 따서 지천(池川)이라 적었다.


 


 




△지천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못이 있었던 들문골짜기 전경


 


 


  마을주민들은 직지사 상가아래의 직지천변 일대를 일컬어 장계(長溪)다리, 장가(張家)다리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옛날 이곳에 직지천을 건너던 작은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밑에 장씨성을 가진 사람이 주막을 내고 있어 장가다리로 불렸다고 한다.


  옛날에는 주막일대에 10여호가 사는 작은 부락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새로 콘크리트다리가 놓이고 마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또 조선시대까지 장가다리를 기준으로 동쪽은 황간현, 서쪽은 김산군으로 나누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향천2리 합천은 지천 아래에 인접해있는 부락으로 마을앞 도로변에 넓은 바위가 있어 마을이름을 너른바우라 부르고 한자로는 광암(廣岩)이라 했는데 경부선 철도가 마을앞으로 나면서 석재를 충당할 요량으로 이 바위를 깨트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마을주민 황철원(69세)씨가 전한다.


 




△광암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너른바위가 있던 장소를 황철원씨가 가리키고 있다.


 


 


또 마을앞 (현재의 면사무소 뒤)에서 직지천과 방하천이 합류한다하여 합천(合川)으로도 불리며 1930년에 보통학교가 처음 설립되었다 하여 학교가 있는 마을이란 뜻의 학교동으로도 불린다.


 




△대항면사무소 뒤편의 직지천과 방하천이 합류되는 지점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부터 옹기를 굽는 가마인 옹기굴이 있었는데 6.25사변 전까지도 송씨성을 가진 형제가 옹기를 구워팔면서 큰 돈을 벌어 부촌으로도 이름났었다고 전해진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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