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대산 정기 받은 덕전리
(정골,대사,죽전)
다수동방면 시내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가다가 영남제일문과 구 봉산 검문소 중간지점에서 “대룡초등학교”라는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덕대산 아래 정골로부터 신평에 이르기까지 하천을 경계로 대룡리와 이웃하고 있는 마을, 덕전리를 만날 수 있다.
덕전리로 속한 부락은 정골(鄭谷), 대사(大寺), 죽전(竹田), 세송(細松, 왕대(旺大), 신평(新坪)등 6개 부락으로 조선시대까지는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었는데 1914년에 이들 부락을 합해 덕산의 덕(德)자와 죽전의 전(田)자를 따서 덕전(德田)동으로 했다.
덕전1리로 속하는 정골은 덕산저수지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약3백 여 년 전에 연일정씨 홍일이라는 선비가 봉계에서 이주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정씨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하여 정골(鄭谷)이라했고 또 덕대산 아래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하여 덕산(德山), 마을 뒤 덕대산 자락 점터골에 쇠붙이를 생산하던 쇠점이 있어 점골(店谷)로도 불렸다.
마을앞의 덕산저수지는 1942년에 축조되었는데 당시 대항면장 하병헌(河炳鉉)씨의 지휘아래 일대 동민들이 동원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의 저수지로 탄생되었다고 마을주민 김호곤(79세)씨가 전한다
▷덕산저수지와 정골마을 전경
못둑 끝에는 하면장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가 섰는데 아카시아 잡목에 가려 비각의 형체만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덕산저수지 아래에는 덕전2리로 속하는 대사(大寺)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남양홍씨 일가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대사라는 지명은 옛날 이 마을에 큰 절이 있음으로 해서 비롯되었다하고 처음에는 한절골, 한지골등을 불리다가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대사(大寺)가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절을 옛날에 찾는 신도가 너무 많아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앞산의 혈을 끊으면 신도가 적어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한 스님이 마을앞산의 산허리를 잘랐고 이후 절이 차츰 쇠락해 결국 망해버렸다는 것.
이때 학 두 마리가 나와 한마리는 직지사쪽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해인사방향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산허리를 잘랐다는 지점이 바로 대사마을에서 정골로 올라가는 현재의 도로로 알려지고 있으며 마을앞 정자나무 자리에 일주문이 있었고 현재 마을 공동우물이 당시 절의 샘이 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맑은 물이 한껏 솟아나고 있었다.
▷절이 있을 당시의 우물이 현재도 대사마을 주민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대사마을 아래의 죽전마을은 마을뒷산에 대나무밭이 있어 죽전(竹田)이라는 지명을 얻었는데 덕대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마을앞을 흘러 개울가에 마을이 있다하여 개울마로도 불린다.
마을주민 심한기(83세)씨는 마을 위 개울가에 반달모양의 야산이 있어 달월(月)자를 써서 개월마 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죽전마을은 봉계에서 이거한 창녕조씨 일가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936년 병자년 수해때 마을의 대부분이 유실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마을앞 개울가에는 1969년 수해때 마을로 떠내려 온 “돌 할머니” 바위를 모셔두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매년 정월 대보름날 올리고 있다.
▷죽전마을 주민들이 수호신으로 섬기는 돌할머니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