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마을이야기(158)
증산면편
▷평촌리(장뜰. 원평촌. 가릇재)
증산면소재지인 유성리 옥동으로부터 대덕면으로 이어지는 가릇재방향으로 위치한 평촌리는 원평촌(元坪村), 장뜰(壯坪), 웃가랫재, 아랫가랫재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있다.
평촌리는 조선시대까지 성주목 증산면으로 속하다가 1895년 성주군 내증산면, 1906년 지례군 내증산면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김천군 증산면 평촌리로 개편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암사와 수도암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위치한 원평촌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에 성주이씨와 청주한씨, 밀양박씨 등 세 성씨가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마을주민 이보영씨가 전한다.
평촌이라는 지명은 산간오지인 증산면에서 그나마 들이 넓은 지역이라 하여 “들이 넓은 마을”을 줄여 “들마”라 하고 한자로 평평할평(坪)자에 마을촌(村)자를 써서 평촌(坪村)이라 했다고 한다.
수도암 방면의 마을은 장뜰이라하고 성할장(壯)자에 평평할 평(坪)자를 써서 장평(壯坪)이라 적었는데 이 또한 주변의 들이 넓음에서 기인된 지명이라 할 것이다.
또 대덕으로 연결되는 고개인 가랫재의 초입에 위치한 아랫가랫재와 윗개랫재 마을이 역시 평촌리로 속한다.
개랫재라는 지명은 지대가 높아 항상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고 하여 가을재라 하고 가을추(秋)자를 써서 추령(秋嶺)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 지금은 가랫재로 불린다.
평촌리를 관류하는 수도계곡에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무흘구곡(武屹九曲)의 제7곡 만원담(滿月潭)과 제8곡 와룡암(臥龍巖)이 위치하고 있다.
▲노송이 일품인 만월담 전경.
지난수해로 예전의 절경이 많이
회손되었다.
七曲 滿月潭
七曲層巒遼石灘
일곱구비 산 겹겹 돌 여울을 둘렀는데
風光又是未曾看
이런 절경은 예전에 본적이 없네
山靈好事驚眠鶴
산신령의 장난에 학이 놀라 깨어나니
松露無端落面寒
솔잎에 맺힌 이슬 얼굴에 떨어져 차갑구나
八曲 臥龍巖
八曲披襟眼益開
여덟구비 마음을 여니 눈앞이 활짝 열리고
川流如去復如廻
흐르는 냇물은 다시 돌아 나오고
煙雲花鳥渾成趣
구름꽃과 새에 홀연히 빠져
不管遊人來不來
오는 이 있고 없고 관여할 바 아니라네
▲제8곡 와룡암 일대. 사진아래로 바위에 새겨진 “와룡암” 글자가 보인다.
만월담 맞은편으로는 한강선생이 말년에 머물었다는 무흘재(武屹齋)가 세월의 풍상이 힘에 겨운듯 위태롭게 서있다.
▲한강 선생이 머물렀다는 무흘재. 누수가 심해 천막으로 지붕을 덮고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