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마을이야기(159)
증산면편
▷평촌리 지난 호에 이어 계속---- 청암사(靑巖寺)
평촌리마을 위쪽 수도산 초입에 자리잡고있는 청암사는 원래 수도암과 함께 쌍계사의 산내암자였던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청암사는 수차례 화재가 발생해 소실과 재건을 거듭해왔는데 현재의 전각들은 모두 1911년 화재이후에 새로 재건된 전각들이다.
청암사는 일제시대부터 불교 강원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1987년 청암사 승가대학이 설립된 후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정진 하는 도량으로 유명해졌으며 현재도 백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정진하고 있다.
“불영산청암사(佛靈山靑巖寺)”라고 적힌 일주문을 지나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잣나무군락을 지나면 위엄있는 사천왕문이 불청객을 압도한다.
천왕문너머 녹음이 우거진 바위숲을 거닐자면 “우비천(牛鼻泉)”이라 적힌 작은 샘이 나타난다.
전설에 따르면 청암사 일대의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으로 샘 자리가 소의 코에 해당되어 소의 코는 항상 물기가 촉촉이 젖어있어야 건강한 관계로 역시 청암사도 사세가 번창할 때는 우비천의 물이 많이 고였었다고 한다.
△ 소의 코에 해당한다는 우비천
그런데 비각뒤로 새로 찻길을 개설하고부터는 샘물도 마르고 절의 사세도 기울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찻길을 낸 자리가 누워있는 소의 목에 해당되는데 이 목을 수시로 차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비천을 지나 다리를 건널라치면 계곡 좌우로 바위를 온통 이끼가 뒤덮고 있다.
청암사(靑巖寺)라는 사명도 계곡의 바위가 이끼가 끼어 푸르게 보인다하여 붙혀진 것이라고 전한다.
새로 튼실하게 놓인 돌다리를 건너고 오래전 성주 어느 논가에서 옮겨왔다는 가냘픈 몸매의 탑을 따라 돌면 비구니 도량답게 부드럽고 은은하게 단청된 대웅전이 솟아 있다.
1911년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건립된 대웅전 내부에는 당시 면모를 일신하고자 중국 강소성에서 모셔온 목조석가여래좌상이 빙그레 웃으시는 듯 앉아계신다.
△대웅전과 석탑
마루끝단에 매겨진 일련번호를 따라 늘어선 육화료의 고무신행렬을 뒤로하고 인현왕후의 회한이 서린 극락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극락전은 청암사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암자로서 1689년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간계로 폐위, 서인으로 강등되시어 첩첩산중인 청암사로 오시었을 때 이곳에 기거하며 보광전에서 복위를 기원했는데 사찰에서는 왕후를 배려하고자 거처인 남별당과 극락전을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인 극락전
당시 서인으로 강등된 신분이었지만 前상전을 모시기 위해 궁인들이 드나들었고 또 훗날 복위한 인현왕후가 나름대로 사찰에 보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왕실과의 관계가 조선말까지 지속되어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극락전을 중창할 때 나온 시주록에는 궁중 상궁들의 이름이 26명 이나 올라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