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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이야기

증산면편(수도산아래 첫 동네)

관리자 기자 입력 2008.07.24 00:00 수정 0000.00.00 00:00

김천마을이야기(160)
증산면편
▷수도산 아래 첫 동네
    수도리(修道里)


 평촌리 장평마을로부터 수도계곡의 절경을 따라 오르면 수도암 아래에 수도리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수도리는 조선시대말까지 성주목 증산면으로 속하다가 1895년 증산면이 양분 될 때 성주군 내증산면이 되고 1906년 지례군 내증산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김천군 증산면 수도리로 개편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수도산, 단지봉, 민봉산, 상투봉 등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산간오지로 마을이 해발 8백미터에 달한다.


 수도리는 약 천년전에 김봉달(金鳳達)이라고 하는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수도리라고하는 마을의 지명은 마을 뒤 수도산에 쌍계사의 산내암자였던 수도암(修道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마을의 지명이 비롯된 수도암 전경


 또 수도리로부터 조금아래 개울너머 내원골에는 내원(內院)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예전에는 10여호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2가구만이 남아 마을의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수도리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조산(造山)돌무더기와 동목 전나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내원암(內院庵)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 마을이라하여 붙은 지명이라고 하나 내원암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마을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을주민 박성향(71세)씨는 1960년대초 까지만해도 가구수가 1백여호에 달해 초등학교 분교가 마을에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는데 70년대 이후 타처로 대부분 떠나고 말았다고 회상한다.



 용소폭포 인근으로 용소골로 불린 또 다른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모두 폐동이 되고 지금은 마을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고 무심한 폭포소리만 하늘로 부서진다.


 마을오르는 길목에 자리잡은 용소폭포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수도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무흘구곡(武屹九曲)의 마지막인 제9곡을 장식하는 절경으로 김천제일의 폭포를 자랑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소폭포
구곡용추(九曲龍湫)
구곡회두갱위연(九曲回頭更쭛然)
아홉구비 고개 돌려 지난 일을 생각하니
아심비위호산천(我心非爲好山川)
내 마음 산천이 좋아 이러함이 아니로다.
원두자유난언묘(源頭自有難言妙)
오묘한 진리를 어이 말로 다하리오
사차하수문별천(捨此何須問別天)
이곳을 버려두고 어디 가서 물어야 하나
한강선생이 수도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무흘 구곡의 긴 여정도 이곳 용소 폭포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사시사철 물줄기를 토해내는 용소의 깊은 여름이 시리도록 푸르고 깊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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